천진기 전 국립민속박물관장
천진기 관장은 매일 암송하고 있는 다섯 가지의 기도가 있다. 첫 번째 ‘일신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서’, 두 번째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서’, 세 번째 ‘인류의 공영과 공존을 위해서’, 네 번째 ‘식물과 동물 등 지구 생태계의 균형을 위해서’, 다섯 번째 ‘우주 질서의 안녕을 위해서’. 두 번째 기도까지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지만 세 번째 이후의 기도부터는 좀 의아해 할 것이다. 천진기 관장은 경북 안동 산으로 신축생(辛丑生, 61년)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민속박물관, 국립전주박물관 등에서 학예사, 학예관, 과장, 관장 등으로 30년 이상 한국의 박물관과 전통문화와 동고동락해온 대표적인 민속학자이다. 현재는 국가유산청 무형유산위원회 위원장,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 (사)울릉우산국문화재단 이사장, (사)경상북도박물관협의회장 등 현역으로 현장에서 활동하고 이쑈다. 저서는 ‘한국동물민속론, 한국말(馬)민속론, 한국마사회마사박물관, 운명을 읽는 코드 열두 동물, 열두 띠 이야기‘ 등이 있다.

<공산성 달밤이야기 하는 천진기 관장>
역시 고도 공주답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오! 윤 교수님도 오셨네~ 이런 프로그램이 전국에 없는 거 같아요. 현장을 보고, 그다음에 음악을 듣고, 다시 강의를 같이 들을 수 있는 그 콤비네이션이 앙상블이라고 하죠. 아까 앙상블이 영어로는 ‘투게더’, 우리나라 말로 ‘같이’, ‘함께’. 이 프로그램이 아마 장르를 불문하고 이렇게 앙상블, 함께, 투게더라는 그 명칭과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저한테 선생님께서 너무 잘 설명해 주셔서 강의를 잘해야겠다는 생각하는데, 강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아까 공산성 올라가서 우리가 역사책에 그런 무미건조한, 죄송한데 교수님, ㅎㅎㅎ~ 학자들이 쓴 역사적 사실들을 현장에 가면 스토리가 함께 이루어져서 스토리텔링이 됐을 때 그 현장은 저한테 굉장히 큰 임프레션으로 옵니다. 강한 인상을 주는 거죠. 그래서 오늘 같은 경우는 저는 따라다니면서 역사적 현장을 스토리를 통해서 또 새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부분이 아닐까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부분이었고요. 최근에는 스토리텔링을 넘어서 스토리두잉(storydoing)입니다. 이제는 그 스토리를 내가 직접 가서 듣는 게 아니라 내가 그 주인공이 되어서 뭔가를 경험을 해야 되는 체험형이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이것은 스토리텔링을 넘어서 스토리두잉인 거죠. 그래서 아까 보니까 가족 단위로 많이 오셨던데, 오늘은 스토리텔링이었다면 다음에 오실 때 저는 내가 주인공이 되어서 공산성을 가족과 함께 스토리두잉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화 프로그램, 체험 프로그램 이 모든 것들이 전부 두잉입니다. 내가 직접 해야 됩니다. 그런 상황입니다.
스토리두잉 시대(storydoing)가 온다
저는 점쟁이는 아닙니다, 하하하~ (방청객 웃음) 오늘 아마 육갑집 풀 준비를 해 오셨나요? 점쟁이는 아니고, 역사와 문화를 푸는 하나의 키워드로 동물을 한번 찾아보자. 그래서 그 동물을 찾아보는데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하나의 수수께끼를 푸는 방법 가운데, 고고학자들은 물질적인 것, 그다음에 민속학자들은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것들, 이런 것들인데 나는 그 문자, 유물 이런 게 아니라 동물을 갖고 어떻게 해석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연적으로 모든 동물을 다 할 수가 없어서 열두 개의 동물, 아까 이야기했지만 띠 동물입니다. 한국사람들은 굉장히 쉽습니다. 나이 몇 살이냐고 묻는 거보다 무슨 띠냐고. 그다음에 또 위로 12년이냐 아래로 12년이냐. (방청객 웃음) 그다음에 또 역사학자들은 60년이 왔다갔다합니다. 60년 단위로. 그러니까 육십갑자, 우리 나이를 헤아리는 것도, 그 띠 동물이지만 연도를 헤아릴 때도 서기 이전에 전부 육십갑자로 했기 때문에 적게는 60년, 많게는 120년, 막 상하로 왔다갔다하는 그런 내용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 속 어떤 동물이 최고일까
여러분들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 속에 만약에 동물이 있다면 어떤 동물을 최고로 치겠습니까? (호랑이~) 호랑이, (여우~) 공주는 곰이라고 해야~ 하하하~ (방청객 웃음) (방청객 : 곰이요~) 곰~ 그래서 오늘 오다가 곰 캐릭터를 몇 가지 찍었습니다. 밤 파는 데도 있고, 곰 찍었는데, 여러분 특히 새라면, 새라면 뭐가? (방청객 : 매~ ) 네? 매, 봉황, 까치, 학, 등등을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다양한 부분에서 날고 있는 새가 있다면 저는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농경문 청동기(農耕文 靑銅器) 뒷면입니다. 여러분, 국사 시간에 농경문, 괴정동(대전)에서 나온 그 국사 시간, 앞에 보면 벌거벗은 남자가 따비질(따비 : 풀뿌리를 뽑거나 밭을 가는 데 쓰는 농기구), 밭갈이하는 모습이 대부분 전시가 되어 있고요, 그 뒷면을 잘 볼 수가 없는 그 뒷면의 모습입니다. 그 뒷면에 보면 가지가 두 개 펼쳐져 있고 여기에 새가 두 마리 앉아 있습니다. 농경문 청동기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의기라고 했죠. 제사 용기였습니다. 이것은 4, 5세기에 낙동강 유역에서 발견된 가야, 신라의 압형(鴨形, 오리 모양) 토기, 오리형 토기, 이건 무덤 속에서 등장을 합니다.
지금도 장승 솟대. 그래서 충청도 지역에 특히 장승 솟대 굉장히 많습니다, 전국 지역에서. 소라실(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에 있는 마을) 장승제도 있고, 현재도 가면 마을 입구에 이렇게 오리 두 마리를 솟대 위에 올려서 마을을 보호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청동기 역사의 시대, 현대까지 하늘에 제사 지내는 청동기에, 사람이 죽었을 때 넣는 무덤 속에 봉납하는 압형 토기(鴨形土器, 오리모양 토기), 그다음에 마을을 지키는 오리. 이렇게까지 계속 이어져 내려옵니다.
우리 역사문화 속에 굉장히 다양한 부분에서 오리가 등장합니다. 오리하면 우리 로스구이 (방청객 웃음) 정도 생각하실 텐데요. 오리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그리고 땅 위에서 뒤뚱뒤뚱 걸어갑니다. 그다음에 파도치는 물 위에 자유롭게 유영을 합니다. 그리고 어디론가 철새에서 어디론가 한 시즌 갔다가 옵니다.
이 팩트는 뭐냐 하면 지금도요. 우리가 과학 기술이 굉장히 발달되었는데 하늘을 날고 땅을 달리고 물 위를 가는 세 개의 영역을 동시에 다니는 과학기자재는 없습니다. 요즘 전쟁 통에 방위산업이 발달 됐지마는, 하늘을 날다가 땅을 달리다가 물 위를 가는 그런 세 개의 영역을, 하늘과 땅과 물을 동시에 다니는 과학 기술이 아직 발달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걸 세계관이라고 하는데요. 우리 민족의 세계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을 어떻게 나누느냐를 세계관이라 하는데 천상의 세계, 신의 세계, 그다음에 땅 위의 세계, 현생,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계, 그다음이 죽고 난 뒤에 가는 저승세계, 우리 보통 저승세계를 땅 지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우리가 저승 강을 건너간다고 합니다. 바다 건너, 호수 건너, 강 건너, 저승 강을 건너가는 겁니다. 강을 건넙니다. 이 세계의, 우리 조상들은 하늘과 땅과 지하, 하늘과 땅과 바다 저 멀리, 호수 저 멀리를 상정하는 세계관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 세계관에 있어서 지금 살고 있는 내가 죽은 조상들한테, 그다음에 신들에게 인간의 뜻을 전하려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의기를 만들어서 여기에 제물을 담고 제사하는데 천신에 제사를 지낸다면 인간이 하늘에 뜻을, 인간의 뜻을 하늘에 보낼 메신저가 필요한 거죠. 그다음에 죽은 조상들이 살아있는 자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되는데, 그때 심부름꾼이 필요한 거죠. 마찬가지로 우리는 지금 우리 마을 입구에 장승을 세우고 솟대를 세워서 우리 마을에 들어오는 잡귀를 막아주려는 어떤 바램을 또 신들에게 전해주려면 심부름꾼이 필요하다. 그 심부름꾼에서 하늘의 심부름, 그다음에 죽은 저승의 심부름꾼으로 저는 가장 적합한 존재가 오늘날 우리의 로스구이인 (방청객 웃음) 오리가 아닐까? 오리만큼 유능한 존재는 없습니다. 심부름을 해줘요. 하늘과 땅과 바다 저 건너, 그다음에 신과 사람과 죽은 조상을 연결해 주는 하나의 심부름꾼, 연결 통로로서 저는 오리를 굉장히 재미있게 보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게 동물민속입니다.
저거 아세요? 아침에 거미를 보면 다 살려줍니다. 그다음에 해지고 난 뒤에 거미 보면 보는 족족 다 죽여버립니다. 같은 존재로도요. 어떤 시점에 보느냐에 따라서 복과 불행이 동시에 등장합니다. 이쪽 충청도 쪽에서 그런 속담 없습니까? 아침 거미 복 거미, 저녁 거미 근심 거미. 그래서 아침에 보는 거미는 복 거미이고요, 해 지고 난 뒤에 보는 거미는 근심 거미라고 해서 같은 저거도 저렇게 죽여버려요.

그다음에 우리가 사슴, 사슴 구멍단지인데요. 신라에서 나온 사슴, 여러분 사슴은 어떻게 이미지하고 계십니까? 사슴은 고고하고 이상향을 그리는 그런 존재로 사슴을 이미지화 되고 있죠. 근데 민간에서는 지금도요 사업하는 사람들 사슴고기 절대 먹지 않습니다. 꿈에 노루가, 사슴이 나타나면 아침에 문 열자마자 소금 뿌려요, 재수 없는 동물이라고. 고대로 올라갈수록 사슴 구멍단지는 샤만 무당이 저승 가는 안내자로 이야기하는 아주 고상한 존재로 등장합니다. 이 참, 그~ 시대에 따라서도 그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릅니다.
까치, 오늘 반가운 손님이 옵니까? 온다고 생각하신 분? 안 온다는 사람? 저는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에 한 표를 던집니다. 까치란 놈은 텃새입니다. 굉장히 영리합니다. 까치는 항상 봄에 짝짓기하고 새로운 집을 짓는데요. 태풍이 와도 다 넘어져도 까치집은 그대로 있습니다. 까치집은 완벽한 곳에 짓고 어떤 뱀이 올라와서
까치를 잡아먹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 뱀들도 접근하지 못할 그런 높은 곳에 짓습니다. 까치는 굉장히 영리하기 때문에 자기 영역의 어떤 존재들이 다 인식을 하고 있는데요. 어느 날 새로운 존재가 자기 영역에 등장하면 개가 자기 영역에 들어오면 짓듯이 까치가 웁니다.
까치하고 고양이하고 싸우는 거 봤습니까? 누가 이기던가요? (방청객 : 까치~) 까치란 놈 굉장히 영리합니다. 직장에 객지에 나가 있는 자손들이 동구 앞에 제일 먼저 등장을 하면 제일 먼저 발견하는 게? 까치죠. 그럼 까치는 울죠. 까치가 울고 나면 반가운 손님이 오는 거예요. 옛말, 그른 말 하나도 없다고 이야기하듯이, 속담이라든가 이것은 하나의 경험상에 만들어진 철학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까치가 오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것은 까치가 갖고 있는 생태적 특징을 그렇게 받아들이는 겁니다.
마네키네코 고양이, 일본의 고양이죠. 요즘 일본을 하도 많이 여행을 갔다 오셔서. 손 흔들고 있는, 식당에라든지 가면 손들고 있는 거. 까치가, 우리는 까치가 반가운 손님이라면 일본에는 고양이가 복을 가져다주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같은 동물도 문화권에 다 다릅니다. 아, 여기 젊은 분이 계셔서, 고양이 집사, 개 집사들이 많겠죠? (방청객 웃음) 우리나라의 고양이는요. 우리 민속 속의 고양이는 그렇게 한마디로 말해서 영물입니다. 요상한 존재입니다.
그 이유는 뭐냐 하면 고양이는 집에 키워도요, 옛날에는 자기가 생리적 현상을 할 때는 밖으로 나갔다 옵니다. 그리고 그걸 반드시 고양이가 호랑이를 포함해서 자기의 배설물을 덮어버립니다. 민담에 보면 고양이는 주인이 원한 맺혀 죽으면 그 주인을 대신해서 변신을 해서 복수를 하는 형태로 궁중 암투에 많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고양이를 영물이라고 표현하는데, 일본에서는 복을 가져다 준다고 그럽니다. 근데 우리 사랑방 화로 옆을 보면 고양이가 항상 와서 낮잠 자고 있죠. 그런데 개는 또 방 안에 절대 못 들어옵니다. 우리는 개를 충복이니 여러 가지 등등의 이야기를 하는데, 사람이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공간에 개가 들어오면 그냥 뱃대지를 차 버립니다. 그런데 고양이는 우리가 영물이라고 하면서도 우리가 사람 살고 있는 곳에 방 안까지 들어오도록 허용을 하는 거죠. 그거는 고양이의 생태적 특징 때문에 그렇고, 두 번째는 뭐냐면 전통사회에서 고양이가 곡식을 쌓아 놓고 그 곡식을 지키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뭡니까? 쥐를 잡아주는 거. 실제적 이익 때문에 신발 벗고 잠자는 공간까지 고양이를 둘 수가 있는 거죠.
이처럼 이런 부분들이. 까치, 일본의 마네키네코, 여기 굿즈에 공주의 곰이 많을 것이라 하고 이렇게 봤는데 곰 없죠? 두 마리 있나요? 자, 우리 헤아리시는 분, 몇 가지 케이스가 있습니까? 그래서 하여튼 그런 부분들인데, 이 하나의 아이템을 갖고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서 굿즈로 팔고 있는 그 모습들입니다.
동물 관련 설화들이 유입, 변형되면서 우리문화로 정착
여러분, 호랑이 담배 먹고 토끼가 담뱃불을 붙여주던 시절에, 이렇게 우리는 옛날이야기 민담에서, 특히 동화에서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이야기를 모든 이야기 서두에 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 알고 보면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담배라는 아이템이 임진왜란 때 들어왔거든요. (방청객 웃음) 지금 말하자면 칠주갑? 420년? 좀 더 지났으니까 얼마 안 됐어요.
그런데 우리는 담배가 갖고 있는 이 아이템을 보고 이 이야기가 허상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의 12지 내지는 동물과 관련된 설화들이 유래되면서 이루어집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음력으로 정월 달이 인월(寅月)입니다. 호랑이 달입니다. 그럼 2월 달은? 토끼 달이고, 3월 달은? 용의 달이겠죠? 그럼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자축인묘 진사오미 신유술해로 시작되니까 자월(子月)이 일월 정월이 되어야 하는데 왜 정월이 아니고 동짓달을 우리가 자월로 하냐 하면, 역사적으로 보면 새로운 왕조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하는 게 시간을 재정비하고 그다음에 세금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무게 도량형을 가장 먼저 정비를 합니다. 동지를 설날로 잡고 있던 시절하고 그다음에 인월을 설날로 잡은 그게 왕조의 변화에 따라서 바뀌어집니다. 동지 팥죽을 한 그릇 먹어야만 한 해가 간다, 한 살 더 먹는다, 세알을 자기 나이만큼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 뭐 그런 이야기.
동지를 작은 설, 아설이라고 하잖아요? 이게 언제했냐 하면, 고려는 선명력을 쓰니까, 고려 말까지 우리는 동지가 설날이었습니다. 이처럼 시대에 따라서 왕조에 따라서 시작되는 시점이 다른데 우리는 지금 현재 쓰고 있는 음력은 바로 인월, 정월 달을 호랑이 달로 여기는 그런 역법을 조선시대부터 써왔던 거죠.

중국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1월 형님한테 2월 토끼가 인사를 한다’라는 문귀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1월에 해당되는 형님인 호랑이에게 2월 달 토끼가 예를 표한다.
이 글귀가 이런 식으로 한국에 와서, 아까 백제 문화의 탁월한 보편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아까 설명을 해주셨는데, 이런 부분 들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나라의 문화가 들어오면서 이렇게 바뀌어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월의 형님한테 2월의 토끼가 예를 표한다는 말이 옛날 옛날 옛날 깐날 깐날 가척 호랑이 담배 먹고 토끼가 담뱃불을 붙인 시절이라 해서 이렇게 벽화가 만들어지고 팔달문에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처럼 우리는 동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는 부분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요즘은 여러분, 동물의 세계에서 가장 나쁜 욕은? (여우~) 네? 여러분들, 공주는 양반들이 많이 계셔서 절대 험구를 하지 않겠지만, 심심하면 동물을 빗대어 욕을 하죠. 뭐 개 뭐, 새 뭐, 닭 뭐, 여우 같은 뭐, 등등. 욕을 계속 동물 욕을 계속하는데. 우리가 동물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지 동물 세계에서 가장 나쁜 욕은? (인간 같은 놈~ 하하하~) ‘인간 같은 놈’. 다른 것 때문이 아닌 우리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종은 이 지구상 생물 종 가운데 수천, 수만 개 가운데 하나입니다. 원 오브 뎀(One of them)입니다.
그들 가운데 한 종일뿐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더 베스트 오브 뎀, 인종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모든 걸 다 변형시켜 버립니다. 그러니까 이런 재앙을 오게 되는 거죠. 우리는 동물의 세계, 동물들을 이해 못한 게 참으로 다행인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지나가는 까치, 지나가는 참새, 그네들이 화가 나서 싸울 때는 항상 어떤 욕을 한다? (인간 같은 놈~ 하하하~) 네~
‘앞으로 욕할 때 내 이름 팔지마’라는 포스터가 어울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모든 게 지금, 인종. 원 오브 뎀과 더 베스트 오브 뎀은 엄청난 차이입니다.
우리 역사문화 속에 문자 아닌, 이렇게 시대가 올라갈수록 다양한 동물상들이 많이 등장을 합니다. 아까 뿔 달린 사슴의 이야기도 참 많이 나오구요, 말하는 호랑이도 나오고, 북부여의 신화에 나오는 금와왕(金蛙王, 금개구리왕), 지금도 두꺼비 개구리를 하나의 부적처럼, 특히 선물로 많이 만들죠? 선물을 보면 암컷이 밑에 있고 수컷이 위에 있는 그런 형태로 지금도 복을 불러주는 존재로 개구리 이야기가 많이 등장을 하고요. 그다음에 사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우리가 고대인들은 기본적으로 동물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신, 그러니까 인간보다 아주 탁월한 능력을 가져서 숭배의 대상으로서 새길 경우도 있을 거고, 그다음에 자기가 수렵 채집 시대에는 사냥을 주로 해야 되니까 사냥의 대상으로서 사슴도 굉장히 많이 등장을 하는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문화로 등장하는 다양한 동물 이야기
그런가 하면 아까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 중앙의 봉황, 이런 오방의 신들도 고구려 벽화 보면 굉장히 많이 등장합니다. 고구려 벽화 고분인 1500년 전에 이미 7월 칠석날 견우 직녀가 만났다 헤어지는 설화가 있었던 거죠. 우리가 지금 이 프로그램에는 역사학자도 왔고 미술사학자도 왔고 한문학자도 왔고 다양한 분야에서 오셨는데요. 민속은 제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민속학에서는 구비전승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입 구(口) 자에다 비석 비(碑) 자에다가, 이어진다(傳承).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기록되지 않는 역사, 물질로 확인되지 않는 역사는 역사로 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특히, 입으로 전해오는 옛날이야기와 그 지역의 지명과 전설과 민담, 설화, 종교지만 비석에 새겨진 명문처럼 아주 정확하게 오랫동안 이어져 온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1500년 전에 고구려 벽화 고분에 견우가 지금 소를 끌고 헤어지고 직녀가 지금 은하수 사이에 두고 이별하는 장면이죠. 이 그림이 있다는 것은 이때부터 이 견우직녀 이야기가 벌써 구전되고 된 걸 누군가가 그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7월 칠석날 지나고 난 뒤에 까치가 (머리) 뒤에 다 털 빠지는 거 아세요? 한 번 봐 보셔요. 진짜 진짜 까치가~ 7월 칠석 지나고 나면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많은 까치들이 깃털이 많이 빠져있습니다. 이것을 본 우리는 ‘오작교 만들려고 하늘에 올라갔다 내려와서 서로 털이 빠져서 그렇다’ 라고 이야기해요. 우리가 동물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동물과 관련된 역사들은 이렇게 굉장히 다양한 요소로 등장을 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동물 이야기가 또 하나 있는데, 얼마 전에 대구에서 이슬람 사원을 짓는다고 동네 사람들이 그 옆에서 돼지고기 꿔 먹는 거 보셨나요? 이슬람 사원을 짓는다고 그걸 막기 위해서 이웃 사람들이 그 옆에서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있습니다. 뉴스가 나왔습니다. 이거는 문화 테러입니다. 총 들고 칼 들고 피를 내야만 테러를 하는 게 아니라 문화적 테러인 겁니다. 그러니까 그 이슬람 문화에서는 돼지를 굉장히 싫어합니다. 그 집에 돼지 한 마리를 밀어 넣어버리면 최고의 모욕입니다. 그런데 그 돼지를 옆에서 구워 먹고 냄새를 풍기고 있다? 이거는 뭐 그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 엄청난 모욕을 주는 현장이다.
그래서 동물에 대한 이미지와 상징도 문화에 따라서 이렇게 차이가 납니다. 9.11 테러가 났을 때요. 서방을 여행하던 중동의 갑부 부호들이요. 보통 마지막 단계에서 개가 캐리어를 검색하죠. 그다음에 두꺼운 옷을 벗게 하죠. 그럼 개가 자기 캐리어에 올라 서면 그 캐리어 버리고 가버립니다. 이처럼 그 문화의 차이에서 동물의 상징과 문화를 이해 못하면 문화적 오해도 굉장히 올 수 있다는 거죠.
날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민속과 문화가 왜 중요한지 지금 계속 설명하고 있는 중입니다. 서울에 첫눈이 내렸는데 아프리카의 한 나라의 대통령이 청와대 방문을 했는데 서울에 첫눈이 내렸습니다. 그러니까 첫인사가 우리나라 대통령이 ‘각하께서 오셔서 하늘에서 축복하고 있는 중입니다. 첫눈이 내렸습니다.’라고 인사를 합니다. 근데 아프리카 자기 나라에서 눈 내리면 재앙인데, (방청객 : 아~) 다 얼어 죽어 버리는데. 그거 아세요, 여러분? 10도 미만이면 대만 사람들 아사, 동사자가 엄청나게 많이 발생한다는 것. 이처럼 그 동물에 대한 이미지와 의미와 상징들이 나라에 따라 다양하게 차이를, 문화적 다양성을 갖고 있는 그런 측면이 포함된 시대죠.
저는 이거 백제 대향로가 백제의 동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상의 동물, 용도 있고, 봉황도 있고, 그 사이에 코끼리도 있고, 원숭이도 있고, 참 다양한 존재들이 등장을 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이 동물 하나하나에 대한 의미와 상징들을 밝힌다면, 또 새로운 역사적 키워드로서 동물 기호와 상징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라 토우 들어보셨나요? 10센티 미만의 흙으로 만든 작은 인형입니다. 이 동물 보이시나요? 이게 어떤 짐승 같습니까? (방청객 : 오리? 거위?) 개미핥기. 지금 중남미, 지구의 반대편에 개미집에 혀를 길게 넣어서 먹는 개미핥기. 이것을 만든 신라 사람들은 시대적으로 5세기, 6세기, 그러니까 통일 이전의 이야기에요. 그런데 신라 사람들은 개미핥기를 보고 만들었을까? 어떻게 이 도공은 상상으로 만들었을까? 상상의 동물, 용도 안 만들면서 신라에 없는 개미핥기가 등장을 합니다.
또 하나는 지금 이 소입니다. 우리처럼 한우가 아니라 동남아에 있는 무소. 이건 뭐 같습니까? 이건 토끼고, 호랑이고, 거북이고. 꼬리가 짧죠? 개, 동경이. 그러니까 역사라는 게 참 신나는 부분이 있는데요.
삼국사기, 삼국유사, 경주와 관련된 기록에 보면 경주 지역에 꼬리 짧은 개가 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신라 토우에 만들어진 모든 개들은 꼬리가 없거나 꼬리가 짧아요. 근데 최근에 이것을 경주 지역 인근에 잔존한 개의 모습을 보면서 그것을 복원을 했어요. 그래서 천연기념물 진돗개, 삽살개 다음으로 동경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역사 복원이란 바로 이게 완벽한 거 아니에요? 기록이 있고 실질적인 유물이 있고 그다음에 살아있는 생물이 합쳐졌을 때 그 역사적 보고는 완벽합니다. 우리는 지금 동물 민속을 내가 자꾸 이야기하는 이유는 뭐냐 하면 지금까지 역사라는 이런 부분의 동물의 모티브라든지 동물의 모습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는데 이런 부분을 통해서 하나하나가 또다시 새로운 관점에서 복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다음에 십장생. 조선시대 오면 민화라든지 궁중화에 많은 동물들이 등장을 하는데, 이때부터 이제 우리가 실질적인 모습의 학도 등장하고 봉황도 등장하고 기린도 등장하고 용도 등장하고 전형적인 모습으로 등장을 합니다. 신라 천마도가 말입니까? 네, 말이죠. 저는 한동안 말이 아니라 기린으로 한 표를 찍었습니다. 그 이유로 첫 번째, 뭐냐면 자동차에 데코레이션 내지는 자동차에 어떤 기능을 부착할 때 자동차를 다시 그리겠습니까? 그러니까 말 안장에 말 장식물에 다시 말을 그릴 이유가 있었을까? 라는 의문이 첫 번째였고요. 두 번째, 그 말과 관련된, 내가 항상 모든 사진과 경마장을 봤을 때 말은 달릴 때 꼬리를 절대 하늘로 쳐들지 않아요. 항상 꼬리를 밑으로 내리고 있어요. 그런데 천마도는 하늘에 쳐들고 있죠.
이런 몇 가지 이유 때문에. 그러다 최근에 제가 기권을 했는 이유가 뭐냐 하면, 서울대학교 생물학과에 말을 전공한 선생님이 계셨어요. 그러니까 서울대공원의 원장을 하시다가 제주 민속자연사박물관장을 하셨던 이분 함자가 생각이 안 나는데, 그분이 말 전공자예요, 생물학자예요. 그래서 물어봤어요. 만나자마자 ‘아, 궁금했다. 뵙고 싶었다고.’ 만나자마자 인사도 안 하고 ‘말이 달릴 때 꼬리를 쳐듭니까?’ (방청객 웃음) 라는 질문부터 했어요. 한참 생각하더니만, 자기네들끼리 달릴 때 꼬리를 든다는 거예요. (방청객 : 아~) 자기들끼리 강제성 없이 막 달려갈 때 꼬리 쳐드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다시 또 천마도의 천마가 다시 천마로 돌아왔습니다. 하하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말의 장식에 다시 말을 또 그렸다? 인간의 그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본성은 같은 곳에 같은 문양을 사용했을까? 이것에 있어서 아직 해결도 안 되고, 그다음에 다른 모습, 그러니까 뿔이라든지 얼굴의 모습이라든지 발굽의 모습은 기린을 정의하는 그 모습과 굉장히 닮아있습니다. 그래서 포기를 했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상상의 나래를 저는 합니다.

제가 시골에 삽니다. 44키로 떨어진 경상북도 포항이라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물론 제 고향도 아니고 저의 연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그냥 여기저기 떠돌이 한번 살아보려고, 저의 고향이 안동인데 안동에 한 20년 살았고 서울에 한 30 몇 년 살았고 그다음에 전주에도 가 2년 살았고 여기저기 살아 보니까 참 좋더라구요. 집사람 고향은 저기 전주인데요. 안동을 중심으로 이렇게 한 바퀴 돌리니까 포항. 그래서 살고 있습니다.
창덕궁 대조전에 있는 봉황도인데요. 봉황은 벽오동,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죽실,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고, 예찬에서 나는 단 샘물이 아니면 먹지 않는 상상의 동물입니다. 또 이게 한 오동나무에 깃들면 사방 3만 리가 평화가 깃든다고 하죠. 그래서 이걸 JPG 파일로 만들어서 내 거실에 붙여버렸습니다. 조선시대 같으면 역적모의라 해서 3족이 멸했겠지만 안방에, 천도복숭아, 일월오봉도에다가 선도도 병풍인데요. 천도복숭아는요 3천 년이 되어야만 열매가 맺습니다. 천도복숭아 하나 먹으면 죽지 않고 불로장생. 삼천갑자 동방삭은 몇 년 살았습니까? 3천 갑자니까 3천 곱하기 60, 18만 년, 이 정도는 살아야만 되는데요. 이 뭐죠? 동방삭은 18만 년 살았어요.
근데 이 천도복숭아는 중국의 신선의 대모인 소왕모가 반도원에서 키웁니다. 신선들한테 파티를 하면서 하나씩 주는, 손오공이 저걸 훔쳐먹고 불로장생을 했고, 달 속에 있는 토끼, 옥토끼가 항아였는데 항아라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여성인데, 그걸 훔쳐 먹고 하늘을 갔고, 불로장생 열매 훔쳐 먹고 하늘에 가서 토끼가 된 그런 설화가 있습니다. 이처럼 어떤 동물, 식물들의 옛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옛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을 읽는다고 합니다. 거기에 의미와 상징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민화에서도 그런 것들이 동물들이 이렇게 참 많이 등장을 합니다.
운명을 읽는 열 두 코드, 열 두 띠
그래서 오늘 그 운명을 읽는 열 두 코드, 열 두 띠 동물의 완결판입니다. 뭐냐면 우리가 이 표를 읽을 줄 알면 동양의 역법과 역학과 문화코드 이것을 다 읽을 수가 있습니다. 이거 찍지 마시고 저기 카페나 저기 저 밑에 있으니까요. 우리 소장님한테 달라고 하셔서 막 갖고 가셔요. 우선 여기에 보면 자축인묘 진사오미 신유술해, 문자로서 12지가 있고 그다음에 동물로서 열 두 띠 동물이 있고 그다음에 00시에서 24시까지 24시간이 있고요, 그다음에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 중앙에 봉황, 오방색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걸 보면 어느 정도 운명을 읽는 코드, 열 두 띠 동물에 대한 핵심이 여기 다 들어가 있습니다.
돼지꿈
어제 저녁에 돼지꿈 꾸신 분? 어제 저녁에 돼지꿈 꾸신 분? 여기 이렇게 안 계시지~ 돼지꿈 꾸면 벌써 복권을 로또를 사 가지고 지금 오늘 지금 그걸 보고 계시죠? 근데 그거 아세요? 꿈속에 돼지가 나타났다고 해서 복권 사러 가는 문화를 가진 민족은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방청객 : 와~) 그럼 왜 그런 문화가 형성됐을까를 역사적으로 끄집어내는 부분들입니다.
그럼 ‘왜 돼지는 복일까? 돼지는 행운일까? 돼지는 재복일까?’라는 그 명제를 역사적으로 한번 끄집어 볼까요? 신라 장옥입니다. 낙랑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마지막 염, 오늘날 생각하면 염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죠, 모든 구멍을 다 막습니다. 옥으로 만든 것으로 다 막아주고 눈, 코, 입, 귀, 항문까지 막고 가슴에 둥근 옥판을 놓아요. 양손에 옥 돈을 쥐여 줍니다. 옥으로 만든 돼지. 그거 아세요, 여러분?
요새 얼마 전까지 집에서 염할 때, 마지막에 관 뚜껑 닿기 전에 한 숟가락, ‘천 석이요, 2천 석이요, 3천 석이요.’ 동전을 넣으면서 ‘천 냥이요, 2천 냥이요, 3천 냥이요’라고 하죠. 저승 노잣돈과 저승 식량입니다. 근데 우리가 돼지와 관련된 기록에 보면, 북쪽에 추운 지방에 있는 사람들은 돼지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 장례에 돼지를 사용했다는 기록들이 중국 기록에 많이 등장을 합니다. 그럼 이 양손이 쥐어진 것은 결국 저승 식량원이었다. 그래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조에 보면 이런 관명도 있었다, 읍루 조에는 돼지 기르기를 좋아했고, 그 고기를 먹고 가죽은 옷을 만들어 입고 겨울철에 돼지기름을 몸에 발랐다. 그다음에 제주도 사람들은 소나 돼지를 좋아한다, 죽은 사람에게 그러니까 실제적인 돼지를 잡아서 관 위에 올리기도 하고, 옥 돈으로, 돼지를 양손에 고인한테 묻어서, 그런 이야기도 있는 거죠. 아까 신라 토우, 신라 사람들도 신라 토구 속에 돼지가 굉장히 많이 등장을 합니다. 이 돼지가 왜 무덤 속에 이렇게 많이 집어넣을까? 등등의 이야기들을 이해할 수가 있는 거죠. 돼지의 모습이 점점 이렇게.
또 하나는 돼지가 삼국사기에 보면 산천에 제사 지낼 때 제일 중요한 제물입니다. 하늘에 제사 지낼 때 하늘과 땅과 제사 지낼 때 희생물로서 교시를 사용했는데 교시가 돼지입니다.
별도의 관리를 두어서 기르게 했는데 만약에 이 교시가 죽거나 교시가 상처를 입으면 그것을 기르는 사람을 땅속에 묻어서 죽여 버립니다. 이럴 정도로 교시는 사람의 목숨보다 더 중요시 여겼던 거죠. 또 보면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유리왕 조에 보면 어느날 이 교시가 또 도망을 가버립니다. 기르는 사람의 관리는 어떻게 됩니까? 교시를 잡아 와야 되지 않습니까? 잡아 오지 않으면 자기가 죽는데, 근데 잡았어요, 따라가서 잡았어요. 돌아와서 임금에게 이야기해야 될 거 아닙니까? ‘여차저차해서 도망을 갔는데 잡았다, 잡고 보니까 거기가 지금보다 훨씬 더 어별(魚鼈)도 많고 땅도 넓고 사람 살기가 편하다’라는 보고를 합니다.
그래서 나라에서도 국내성이 옮겨집니다. 국내성을 점지 준 게 돼지로 등장합니다. (방청객 : 와~) 그리고 똑같은 말로 산 사람이 자식이 없어서, 아들이 없어서 기도를 하고 다녔는데, 어느 날 또 교시가 도망을 가버립니다. 그럼 또 많은 사람 동원해서 잡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무도 못 잡았는데 수통촌이라는 촌에 이르렀는데 다른 사람 아무도 못 잡았는데 처녀가 그걸 잡아줍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 그 사람은 이 처녀와 처녀의 집에 들어가서 하룻밤을 자고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이 교체 동천왕(郊彘 東襄王)입니다. 국모를 점지시켜 준 것입니다.

고려사, 고려세계(高麗世系) 조에 보면 또 돼지가 송악산 남쪽 기슭에 고구려의 왕궁터를 점지해 준 게 돼지입니다. 그러니까 왕건의 할아버지가 작제건입니다. 작제건은 활을 잘 쏩니다.
그런데 작제건의 아버지가 당나라 숙종이라고. 하여튼 작제건이 아버지를 찾아서 서해를 건너가고 있는데 갑자기 풍랑이 일면서 배가 파산 직전에 있었고 또 진척이 못 됐는데 그때 한 노인이 나타납니다.
나는 서해 용왕인데 밤마다 여우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여래의 모습을 하고 나를 괴롭힌다.
이 배에 활 잘 쏘는 작제건이란 사람이 있는 걸 아는데 고구려 사람이 있는 줄 알고 나를 따라와서 그 여우를 좀 잡아줘야겠다. 작제건은 그 할아버지를 따라서 용궁으로 갑니다. 그날 저녁에 활을 쏴서 여래로 변장한 여우를 잡았습니다. 그 대가로 용녀와 결혼을 합니다. 그러면서 많은 금은보화를 주려고 하는데 한 노인이 지나가다가 용왕의 딸하고 결혼하지 그래~ 하면서 지나갑니다. 그래서 용왕의 딸하고 결혼합니다. 그리고 또 많은 선물을 주려고 하니까 용왕이 딸이 한 말이, 돼지 한 마리하고 지팡이만 달라고 해라.
그래서 돼지 한 마리와 지팡이를 들고 중국 당나라로 갈 것을 포기하고 다시 고구려 땅으로, 그때 아직 후삼국이 통일 안 된 고구려 땅으로 돌아옵니다.
그러고 나서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이 돼지가 자기 우리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작제건이 네가 우리 집이 집터가 안 좋아서 그런 모양인데, 네가 내일 좋은 집터를 찾아간다면 우리가 이사를 가겠다. 그런데 그 이튿날 돼지가 쫄랑쫄랑 갑니다. 뒤따라 가서 갖더니만 송악산 남쪽 기슭에 머뭅니다. 거기에 집을 짓고 아들 손자 대에 후삼국을 통일하고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는 고려 건국 신화에 보면 이렇게 돼지가 나라의 수도를 점지해요. 이 정도면 엄청난 거 아닙니까? 우리 동물들 가운데서 돼지만큼 나라의 수도를 몇 번씩 정해 주고, (방청객 웃음) 국모도 정해 주고, 그다음에 저승 식량까지도 이야기되고, 뭐 이런 등등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고사상에 우리가 신라, 아까 고구려, 삼국사기에 보면 봄, 가을로 하늘과 산천에 제사를 지내는데 그때 가장 중요한 게 교시고 교시가 바로 돼지라고 이야기했는데 그 전통이 결국 민간에서는 고사상으로 연결됩니다.
고사상
고사상입니다. 고사상 많이 보셨죠? 요즘도 요즘은 옛날에 시월 달만 되면, 제가 처음 서울 갔을 때만 해도 제기동 돼지머리 골목에 가면 항상 고사용 돼지머리 써서 붙여 놨습니다.
그런데 고사용 돼지머리도 인상 쓰거나 뭐 이런 건 안 됩니다. 삶아서 딱 꺼냈는데 웃어야 돼요. (방청객 웃음) 그래야 돈을 많이 벌어요. 그러니까 삶는 것도 그분들의 나름대로 재미있는 노하우를 갖고, 나중에 선생님한테 물어야~ 저는 그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요. 이게 아날로그 시대까지는 되는데, 디지털 시대에는 어떻게 됐나요? (방청객 웃음) 디지털 시대에는 모니터에 들어 와 버립니다. 그러니까 문화라는 것은 컬쳐 체인지, 문화는 변화합니다. 근데 그 근간이 되는 전통문화, 그 핵심이 되는 문화적 사상과 정신과 사상과 의미들은 상징들은 그대로 이어져 온다는 게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이게 뭐냐 하면 디지털카메라 출시기념 고사상입니다. (방청객 웃음) 제사상 제기 위에 디지털카메라를 놓고 여기에 그래도 돼지머리 고사상 빠지면 헛방이니까 이렇게 모니터를 놓습니다.
서울에 내가 민속박물관의 책임자로 한 8년을 있었는데요. 출입하는 기자가 미술 전시회를 한다고 초청장이 왔어요. 그래서 아~ 이거. 근데 그 초청장에는 그 조화, 축하 화환 절대 받지 않습니다라고 그래서 기분 좋게 갔죠. 절대 안 받으니까 아무 것도 안 줘도 되겠네. 그런데 입구에 돼지 한 마리를 갖다 놨어요. 하하하~ (방청객 웃음) 결국은 뭡니까? 네, 그래서 5만 원짜리 한 장을 내고 온 기억이 있는데, 어쨌든 저런 식입니다. 산에 다니시는 분 계시죠? 시산제. 북한산 바로 밑에서 1월 1일만 지나면 시산제 지내는 행렬이 엄청납니다. 경동시장에 가서 돼지머리를 사 가지고 낑낑 둘러메고 올라갑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고사, 시산제를 지내고, 먹을 수 있습니까?
귀하고 코하고 막 삐져 넣고, 다시 들고 낑낑 내려오는 전통 고수파. 그다음에 약간 변화파. 돼지머리 굳이 가지고 갈 필요 뭐 있나? 돼지머리 수육 갖고 가면 되지. (방청객 웃음) 수육 갖고 가는 파. 혁신파. 야, 그런데 우리 시산제 지낼 때마다 이거 먹지도 못하고 이거 살 일이 뭐 있느냐? 모형을 하나 만들자. 모형을 사자. 모형 지금 팝니다. 인터넷에서 고사용 모형 찾아보십시오. 14만 원 내지 15만 원 정도. (방청객 웃음) 그러면 매년 쓸 수 있지 않느냐? 가볍지 않냐? 그래서 그렇게 하는 방법인데, 더 MZ 세대는 뭘 하냐면, 사진을 찍어 갖고, 칼라프린트를 해 갖고, 그 고사장에 그냥 사진을 부착해요. (방청객 웃음) 자, 이 세 가지가, 몇 가지 아무리 유파가 많아도 돼지머리라는 사실은 변화가 없는 거죠. 이게 동물 상징문화에 대한 것입니다.
2021년 5월 29일 구찌코리아 개업식 고사장입니다. 이건 뭐냐 하면 이 유물을,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객지에 나가서 조상 제사를 모시게 될 때, 별도의 그걸 못 차리고 사당을 못 가니까 사당 그림을 그려놓고, 이게 뭡니까? 사당도에다가 모란을 그렸죠? 수박, 가지, 참외, 석류 등등 많이 있죠.
지방만 딱 붙이면 제사를 어디든지 지낼 수 있게 만든 감모여재도. 상 차릴 필요 없습니다. 저기 다 차려 있고, 씨가 많은, 전부 다 씨가 많은 과일이죠. 결국 우리가 조상을 위하는 것은 뭐냐 하면 다산과 다복입니다. 가정이 집안이 번창한다는 건 자손이 많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 씨가 많은 그런 존재입니다.
싸우지 말고 요즘은 저 그림 붙여놓고 아버지 신위, 어머니 신위 놓고, 네, 그렇게 해서 제사 지내면 쉬울 것 같아서, 지금 저 JPG 파일 받았습니다. 민속박물관 유물이거든요. 그래서 저걸, 액자 크기가 1미터 10센티하고 80센티이니까 그럼 저거의 반 정도 됩니다.
왜냐하면 옛날에도 지방을 다닐 때 두루마리 내지는 조그만하게 만들어 갖고 다녀요. 휴대용이기 때문에. 그런데 내가 이걸 또 보여준 이유는 뭐냐 하면 이걸 구찌코리아에서 개업 고사상을 만들었어요,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디자인 회사에서.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여기는 돼지머리가 없어요. 근데 여기는 돼지머리 넣었어요. 왜, 이거는 조상제사, 아까는 감모여재, 조상 제사 유물이지만 이것은 개업 고사, 돈을 벌어야 되니까, 고사상의 모습이니까 돼지머리를 집어넣은 거예요. 우리는 이미 잊혀진 하나의 문화요소와 민속 요소 현상들을 외국계 디자인 회사는 이걸 끊임없이 우리 유물과 우리 문화를 활용해서 이런 방식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유물을 이걸로 바꾸었는데 우리 검은색 기와지붕을 색동색으로 만들었고요, 그다음에 돼지머리를 없는 걸 돼지머리를 넣었어요. 그 차이인데, 그래 갖고 색동을 갖고, 여러분, 이거 구찌코리아의 신상입니다. 주시면 입으시겠어요? (방청객 웃음) 왜 웃으십니까? 얼마면 사시겠습니까? (안 사요, 안 입어요~) 그냥 줘도 안 입어요? 얼마라고요? (한 오만 원~) 우리 이런 좋은 컬러 콤비네이션, 이 색동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우리 문화를 왜곡시켜서, 얼마라고요? 3백만 원 넘습니다. (방청객 놀람) 팬츠가 137만 원이고요 셔츠가 168만원. 없어서 못 삽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전통문화 내지 민속문화에 대해서 너무 쉽게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는데요. 이렇게 많은 부분들이 새롭게 의미와 상징들, 새롭게 만들어가는 그런 측면들이 있습니다.
하여튼 이처럼 이렇게 동물에 대한 이야기들은 전통적으로 다 끌어내서 설명해 줄 수 있는 그런 측면들이 있습니다. 그다음에 또 하나는 뭐냐면 복희여화도(伏羲女媧圖) 보셨나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완벽한 유물이 복희여화도. 고구려 벽화 보면 삼실총에 있는 교사도. 그런데 지금까지 이 사람은 왜 S 자로 이렇게 막 꼬고 있고, 서로 얼굴을 붉히고 있는 거에 대해서 전호태 선생님도 고구려 고분벽화 특별한 설명을 하지 않았고 어떤 사람도 그냥 뱀이 두 마리가 꼬고 있고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라고. 그다음 복희여화도는 문화창조신, 가위를 잡고 있고 가위와 자를 들고 있죠. 쉽게 말하면 인류의 조상, 복희 여와인데, 이 정도만 설명했지 아무 설명 못했는데, 파충류 가운데 뱀을 공부하시는 80년대 서울대 백남극이라는 선생님이 뱀이 자연 상태에서 짝짓기하는 모습을 봤어요. S 자 형으로 꼬아서 서로 관계를 하면서 얼굴을 마주 보면서 하고 있는 이 장면, 이 장면이 여기에 왜 들어가 있냐고요?
뱀은 기본적으로 불사의 상징입니다. 뱀은 보면 무조건 잡아야 되죠? 잘못 죽이면 다시 살아 나와서 보복하기 때문에 단절히 죽여야 되고, 그래도 살아날까봐 나무에 매달려 놓아야 되고, 그것도 부족해서 아이들이 다 모여 앉아 일동 거기에 놓고 오줌을 싸야만 뱀이 더이상 살아나지 않습니다. 지금. (방청객 웃음) 저 모습, 뱀은 죽지 않고 불사. 왜냐면 모든 존재는 죽으면 끝나는데 뱀은 겨울에 죽었다가 봄에 다시 살아나요. 불사라는 이미지 갖고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그러니까 치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의학의 신이 뱀입니다.
최고 잘생긴 호랑이라고. 그 나름대로 석수장인은 최고의 조각가인데. 호랑이를 보고 만들었을까요? 안 보고 만들었을까요? (방청객 : 안 보고~) 보고 만들면 저렇게 못 만들죠. 저 그림 얼굴 속에는 내 얼굴도 있고, 우리 할머니 얼굴도 있고, 우리 할배 얼굴도 있고, 보고는 저렇게 안 만들어요, 그래서 최고의 아티스트가 만든 이 속에 이것이 의미하는 이 표정이 의미하는 것은 한국인이 호랑이에 갖고 있는 모든 생각들을 저기에 전 표현됐다고 생각해요.
오늘의 본론인 띠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띠 이야기를 한국 사람 살아가면서 세 번 정도 합니다.
첫 번째, 연말연시에 한 해의 행운을 이야기하면서 그 동물의 수호 동물이라 할 수 있는 동물의 특징을 행운으로 풀어갑니다. 우리 여러분들 1월 1일 날 6시 뉴스부터 땡 뉴스에 뭡니까? 올해는 무슨 해, 올해 무슨 띠의 해가 밝았습니다. 이 동물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고, 우리 민족은 어떤 의미를 같습니까?
양띠 같으면 지금 대관령 양떼 목장으로 바로 연결합니다. (방청객 웃음) 도대체 뉴스 시간에 팩트만 전달해야 되고 하는 부분에 왜 우리는 띠와 관련된 이야기를 정초에 하느냐는 거죠.
이건 뭐냐 하면 한해의 운수를 한해의 행운이 그 해의 수호동물이라 할 수 있는 띠 동물의 성격과 의미를 함께 반영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때 띠 풀이를 보면, 말띠 해는 말이 굉장히 와일드 하듯이 굉장히 변화가 심한 한 해가 될 것이다. 양띠 해는 아무리 못된 시어머니가 양띠 손녀를 낳아도 구박하지 않듯이 양은 평화로운 한 해가 될 것이다, 등등의 이야기를 정말 팩트를 전해야 할 뉴스 시간에 그것이 나오고 첫 번째 꼭지가 그 동물과 관련된, 서울대 공원의 호랑이 맹수사에 나가 있는 기자 나오십시오, 이렇게 설명하잖아요. 이처럼 우리는 연말연시에 행운을 이야기하면서 그리고 또 이런 이야기 합니다. 그건 뭐 새해 시작이 언젠데, 뭐 어떤 때는 동지부터 시작해서 이야기하고 어떤 때는 1월 1일 양력으로 이야기하고 어떤 때는 음력으로 이야기하고 어떤 때는 그 뭐죠? 입춘부터 시작하고 막 등등이 다 다릅니다. 그거는 다음에 하고. 그리고 두 번째,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순간, 그 아이의 평생 수호 동물이라 할 수 있는 띠 동물이 어떤 상황에 있느냐에 따라서 그 아이의 운명과 성정을 이야기합니다.
범띠? 손들기 싫습니까? 범띠, 섣달 정월달 범띠에 섣달 정월 밤에 손주가 태어나면 우리 할머니들은 삼을 가르면서 ‘이놈의 바람기 어찌할고~’ (방청객 웃음) 아니, 그러니까 범띠 해에 밤에 손자가 태어났는데 얼마나 기뻐해야 되는데, 우리 할머니들은 삼을 가른다? 탯줄을 자르면서, ‘이놈의 바람기 어찌할고~’ 그 이유는 뭐냐 하면, 호랑이는 생태적으로 일부다처제입니다. 한 영역 안에 최고의, 동물의 왕국에서 보시다시피, 사자, 이런 최고의 우두머리가 모든 걸 암컷 다 차지합니다.
그리고 호랑이는 자연 상태의 호랑이 1년에 한 번 짝짓기를 합니다. 정월 달 섣달 밤에, 호랑이는 야행성입니다. 그래서 이때 기록을 보면 조선왕조실록에 인왕산에 호랑이 울음소리 때문에 임금님이 잠을 설쳤다는 기록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호랑이는 1년에 한 번 짝짓기하는 그때, 호랑이는 발정하면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계속 짝짓기합니다, 일주일 동안. 그 순간에 태어난 남자아이는 그 호랑이의 에너지틱한 힘을 받아서 ‘갓을 두 방에 건다’ 라고 하는 거죠. 이처럼 우리는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 그 평생 수호 동물이나 띠 동물이 어떤 상황에 있는가에 따라서 그 아이의 운명과 성격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저 4월 달에 태어났어요, 소띠인데. 4월 17일 아침 아홉 시에 태어났어요. 여러분, 음력 4월 달에, 혹시 육갑집 푸시는 분 계신지, 4월 달에 아침 아홉 시에 소는 뭐합니까? (방청객 : 일해요~) 네, 먹지도 않고 물도 못 얻어먹고, 그러니까 빨리 논을 갈아야만, 번지를 쳐야만 모심기를 하잖아요. 그래서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항상 그놈의 일 복 때문에 어이하냐고 이야기하시는데요.
뭐 잔나비띠는 손재주가 많아서 세계적인 과학자가 될 수 있다, 등등 닭띠는 뭘 파헤쳐야만 먹이가 생기는 것처럼 돈을 써야만 부자가 된다, 쥐띠는 밤에 태어나면 식복이 많다, 이런 등등의 이야깃거리를 속담과 설화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이게 두 번째 띠 담론입니다.
세 번째 띠 담론은 그 아이가 커서 결혼할 때, 옛날에는 궁합을 봅니다. 어떤 띠와 어떤 띠는 상합이고 어떤 띠와 어떤 띠는 원진 관계이다라고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여러분, 호랑이띠와 원진 관계는, 호랑이띠와 맞지 않는 띠는? 닭띠입니다. 자, 배고픈 호랑이, 야행성이죠. 배고픈 호랑이가 새벽에 가장 듣기 싫은 소리는? (방청객 웃음) 태양이 떠오르는 닭 울음 소리죠.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궁합을 띠 궁합을 볼 때 그 동물의 속성과 동물과의 관계 속에서도 설명하고 있는 관계가 있습니다. 물론 그게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사람들은 띠를 갖고 연말연시에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결혼할 때, 이 세 번의 띠 담론을 형성하고 있고요, 이 띠 담론은 지금까지도 연결됩니다. 오늘날 한번 쌍춘년이 와서 결혼해야 되고, 그다음 날 100년 만에 오는 붉은 돼지 황금돼지띠라고 해서 많이 태어나야 되고 등등의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는 이 띠 담론, 동물에 대한 의미와 상징들은 끊임없이 전승되고 있고, 그것이 우리의 생각 속에 우리의 일반적인 문화 속에 계속 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주와의 인연
제가 공주와의 인연은 1992년인가요? 그 탄천 대학리, 정월 대보름날, 장승을 세우는 날, 장승제, 그런데 여기서 탄천까지 정월 열 나흘 날 밤에 버스를 타고 들어가서 나오는 차가 없었어요. 나오는 버스가 없어서 그 마을에 잠을 얻어 자는 거죠. 제가 가면 손님이라고 그 새 이불을 줍니다. 그럼 앉아 갖고 밤새도록 장승제 지내는 이야기 듣는 거죠. 그리고 나올 때는 그때는 차가 없으니까 배낭에 있는 담배, 선물로 주는 게 아니라 감사 답례품 줄 담배를 몇 개 있었어요. 담배 드리고 나왔어요. 그래서 소라실하고 탄천 장승제를 지낼 때 그때 때문에 여기 공주에 왔었고요.

<청중과의 대화 중 방문객에게 질문 받고 있다>
공주하면 저는 장승과 연결되요. 네, 장승 솟대. 이걸 저는 최근에 탄천리 장승이 아마 도지정으로 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어서, 그 청양 이 공주 쪽에는 다른 어떤 지역보다 목장승들이 많이 있고, 지금도 그 장승 의례가 있어서 저는 이런 부분을, 요새 국가유산청의 공동체 종목이라는 게 있는데 이런 부분들을 한번 연결해서, 참 재미있는 현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 그래서 공주와의 인연은 그 첫 이불, 한 번도 덮어보지 않는 그 이불을 내려줬던 그 할아버지, 할머니의 감사함이 지금도 아주 생생합니다. 그래서 공주에 굉장히 좋은 이미지와 감사함과 고마움을 갖고 있습니다.
지식전달 강의가 아니라 내가 동물 민속 내지는 동물 상징과 동물 의미 갖고 있는 여러분들 기존 생각이 0.00001%만 바뀌어도 제 강의는 성공한 것이고요. 그리고 기분 좋게 지금 고속도로 올라가서 쫙 내려가다 추풍령에 가서, 옛날 같으면 기차를 탔으면 맥주를 한잔 딱 하는데, 하하하~ 맥주 대신에 뭔가를 먹고 내일 포항 가서, 여러분 포항 물회 드시고 싶으면 소장님한테 말씀드려서 오십쇼, 내가 최소한 물회 한 그릇 대접하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방청객) 네, 강의 잘 들었습니다. 네. 아까 그 민속학에서는 꼭 증거 유물이 아니더라도 구비되는 것들도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구비되는 것들을 어떻게 알게 되나요? 구비되는 것들이 어디에 기록이 돼서 그걸 연구를 하는 건지 아니면 어디서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더라라는 소문을 듣고 가서 연구를 하시는 건지 궁금합니다.
네, 좋은 질문인데요. 시장님 얼굴이, 뵙다 했더니 제가 공립전주박물관의 책임자로 있을 때 공주박물관 개막식 때 가보면 항상 시장님이 굉장히 공주에 대한 자랑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얼굴이 익는 것 같습니다. 윤용혁 교수님은 자타가 공인하는, 그래서 딱 얼굴 보는 순간 강의 망했다, 하하하~ 아는 사람이 내 눈앞에 있으면 강의가 안 되는 거 아시죠, 여러분? (예~) 근데 오늘 망했는데, 교수님 잘 봐주십시오. 아, 답을 해야 되는데, 어떤 주제를 갖고 들어갑니다. 주제, 예를 들면 아까 장승이라고 했을 때 공주지역의 장승을 지내는 곳에 대한 그게 기존에 보고서도 있고 그다음에 많이 알려진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해서 필드 워크라는 표현을 씁니다, 현지 답사, 현지 조사. 그래서 그것이 장승제 지내는 시점에 가서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참여하면서 현장을 관찰하고 그다음에 역사를 이해하지 못할 때, 그 마을의 가장 오래된 어른들을 통해서 ‘집단기억'이라고 하죠. 그러니까 한 사람만 만나서 이야기하면, 그러니까 기억의 왜곡, 시간의 왜곡이 가능한데, 경로당이라든지 여러 어른들을 모셔 놓고 동시에 집단적으로 인터뷰를 하면 그게 기억의 오류, 시간의 오류들이 좀 잡혀집니다. 그리고 객관성을 유지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그게 무슨 학문이냐, 시골에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이야기 듣고 정리해서 논문 한 편 쓰는 게 무슨 저거냐 하지만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그분들은, 그러니까 장승제를 한 번만 지내는 게 아니라 여러 누대에 걸쳐서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께서 지내왔기 때문에 그 이야기들이 집단기억 내지는 집단의식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서 객관화해서 보고서를 쓰고 논문을 쓰는 것이 민속학이다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네.
(방청객) 예전에는 제사를 지낼 때 자시에 지내야 된다 이래 가지고 11시 넘어서 1시 사이에 제사를 지내야 됐잖아요? 근데 요즘은 그런게 우리들이 살다 보니까 너무 불편해서 저희 집부터도 새마을 제사니 뭐니 해서 여덟 시쯤에 지내니까 애들 그다음 날 학교 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고 너무 편리하고 좋은데 그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동물 민속이 아니라~, 전례원, 성균관 전례원에서 나와서 제사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많이 알고 나면 자유롭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면 내 생각과 내 행동이 자유로울 수 있듯이. 저는 다 이해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제사에 관련된 원칙과 룰이 시대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화가 되고 있고 어느 하나가 이게 맞다라고 이야기하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그 시대에는 이런 현상들이 있었고 이런 현상도 있었는데 오늘날은 당신에 맞게, 내가 다 봤더니 만, 시대따라 다르고 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에 나는 내 대로 지낸다, 이런 이야기죠. 그래서 차례를 자시에 지내는 곳도 있고 돌아가시기 전날, 보통 제사는 돌아가신 전날 저녁 자시에 지내잖아요. 그러니까 그걸 하루 밀려서 돌아가신 날 아침, 저녁 7시에 저녁때 제사를 지낸다든지 이런 등등의 이야기입니다. 아까 감모여재도에서 보다시피 제물을 지는데 굳이 홍동백서, 좌포우혜 이런 등등이 아니라 그냥 편안하게.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성이 중요하고 내가 이 자리에 있게 해 준 조상의 대한 의미를 하루 정도는 되새긴다라는 그 의미와 정성이 중요한 거자, 시간과 절차와 형식이 중요한 건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방청객 박수)

<루키아앙상블의 작은 음악회>
| 백제부터 근현대까지 품고있는 공산성 |
공주시 문화관광해설사 윤혜민
안녕하세요? 공산성 공주시 문화관광해설사 윤혜민입니다.
2015년 공주의 공산성, 무령왕릉과 왕릉원, 부여, 익산의 백제역사지구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백제 시대에 축성된 이래 공산성은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적 사건의 무대로 등장한 중요한 성곽입니다. 공산성이 북쪽으로는 금강이 흐르고, 동·서·남쪽은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는 천혜의 요새이기 때문입니다. 고구려에 밀려 웅진으로 천도한 백제의 왕궁지로 공산성이 추정되고, 나·당연합군을 피해 의자왕이 마지막 피난처로 공산성을 택한 것, 또 임진왜란 때는 명나라 군대의 주둔지였으며, 이괄의 난을 피해 남쪽으로 파천한 인조가 머무른 것도 다 이러한 전략적 중요성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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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은 그 모양이 마치 ‘공’ 公자를 뒤집어 놓은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백제와 통일신라 시대에는 공주의 옛 이름을 딴 웅진성으로, 조선 시대에는 공산산성, 공주성, 쌍수산성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려 왔습니다. 특히 쌍수산성은 인조가 공산성에 파천한 인연으로 생긴 이름으로, 인조가 두 그루의 나무를 뜻하는 ‘쌍수’ 사이에 기대서서 이와 관련하여 공산성에는 인조의 파천 행적을 기록한 ‘쌍수사적비’와 ‘쌍수를 기념해서 세운 ’쌍수정‘이 건립되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공산성 내에는 백제의 시대의 연못과 왕궁 및 임류각 터,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3명의 업적을 기려 세운 명국삼장비, 그리고 영은사와 만하루 등 많은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공산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서 보편적 가치는 이처럼 백제 시대만의 역사가 있는 것이 백제 시대부터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모두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 해설을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
다.
이 행사는 세계유산활용프로그램으로 국가유산청과 공주시, 충청남도가 지원하고 (사)한국국가유산안전연구소가 진행한다.
글쓴이 : (사)한국국가유산안전연구소 소장 이태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