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이사장
| 김정희 이사장이 맡고 있는 국외소재문화재단은 우리나라 밖에 있는 한국문화재 업무를 전담하는 국가유산청 산하 특수법인이다. 2012년에 설립된 이 재단은 국외에 있는 국가유산 환수 뿐만 아니라 보존·활용, 국제교류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동안 128건 963점에 대한 국외 국가유산을 환수하는 성과를 올렸다. 최근 재단 사업 가운데 이목을 끌었던 것은 고려시대 사경(寫經) ‘묘법영화경’ 권제6을 환수한 일이다. 이처럼 ‘재단이 꾸준히 사업을 하다 보니 일본 현지 분위기도 변하고 있다’고 한다. 김 이사장은 이화여대 사학과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원광대학교 고고미술학과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사)한국미술사학회장 등 미술사학자로서 한 길을 걸어오면서 학계에서 불교회화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불화와 건축, 조각 등 불교 미술품은 사찰이라는 공간에서 그 의미가 살아나고 대중들을 궁극적으로 부처님 세계로 인도하는 매개체이며, 문화유산 역시 한 민족과 나라와 사상, 신앙 등을 담고 있기 때문에 나라에 있어야 한다’며 국가유산 외교관으로 책임을 다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찬란한 불교미술의 세계, 불화’, ‘왕실, 권력 그리고 미술’, ‘조선왕실의 불교미술’ 등이 있다. |
현재 전국에 남아있는 괘불 120점 중 공주지역은 3점
공주는 백제 때부터 우리나라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그런 곳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굉장히 이른 시기부터 불교가 들어와서 불교미술, 불교문화가 크게 발전했던 그런 곳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미 삼국시대부터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대통사, 대통사지(大通寺址)만 남아 있습니다마는 이런 것을 비롯해서 현재 그 유명한 사찰들, 마곡사, 갑사, 신원사 이런 많은 사찰들이 창건되었던 곳입니다. 이어서 통일신라시대 그리고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지나면서도 이 공주 지역의 불교문화가 크게 꽃피우게 됩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공주 지역의 사찰은 모두 41개소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그중에 조계종 사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요, 나머지 태고종이라든가 기타 종단의 사찰들까지 본다면 한 40여 개 사찰들이 현재 이곳에 남아있습니다. 물론 이 사찰들에는 여러 불교 미술들, 예를 들어 불교 조각을 비롯해서 회화, 공예, 건축, 이런 많은 문화재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불화(佛畫)만을 살펴본다고 하면 무려 112점, 굉장히 많죠, 생각보다? 112점이나 되는 이러한 불화들이 현존하고 있는데요, 그 불화의 종류만 하더라도 거의 모든 전각(殿閣)에 봉안돼있는 이런 불화들이 남아있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오늘 제가 선생님들께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바로 3점밖에 안 되는 괘불(掛佛), 괘불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좀 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공주의 괘불은 굉장히 독특합니다.
우리나라의 괘불이 지금 120점이 남아있는데요, 이 가운데서도 공주의 괘불은 그 괘불의 역사, 또 괘불의 여러 가지 특징들을 보는데 아주 중요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3점을 갖고 한번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괘불은 임진왜란 후 제작된 것으로 추정
공주 지역에는 이렇게 3점의 괘불이 남아있습니다. 갑사, 신원사, 그리고 마곡사입니다. 그런데 연대를 보면 다 17세기죠. ‘아니, 공주 하면 백제부터 역사가 이렇게 이어져 왔는데 너무 늦은 시기의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지금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괘불이 제일 오래된 게 1622년입니다. 예, 그렇게 본다면 이 120점을 쭉 놓고 볼 때 공주 지역에 불화들이 굉장히, 괘불이 아주 앞선 시기에 만들어진 그런 중요한 작품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가 있을 것 같아요.
아마 괘불, 요즘에 많이 보셨죠? 혹시 어디 괘불을 보셨나요? 세 점 다 보신 분? 다 보셨나요?
네, 마곡사 것도 보셨을 것 같고, 또 갑사 같은 경우에는 개산대제(開山大祭, 창건일 기념 법회) 할 때 2년에 한 번씩 괘불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신원사 괘불도 그렇고 아마 공주를 사랑하시는 선생님들께서는 많이 보셨으리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이 괘불은 한마디로 걸 괘(掛) 자에다가 부처님 불(佛) 자를 씁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을 밖에다가 내어 건다.’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괘불은 절대로 전각 안에 거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죠? 왜냐하면 밖에서 어떠한 큰 행사가 열릴 때, 요즘에 제일 큰 행사는 사월 초파일? 그런 행사라든가 아니면 갑사 같으면 개산대제, 그리고 또는 영산재(靈山齋), 또 돌아가신 이런 영혼들을 위해서 지내는 수륙재(水陸齋), 많은 이런 큰 제사들이 있는데요, 이러한 제를 할 때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모이게 돼요. 그러면 조그만 전각 안에 들어가서 다 수용할 수가 없는 거죠. 이런 경우에는 안에 있는 부처님을 밖으로 와서, 그 부처님을 꺼내서 예배자 상으로 해서 법회를 해야 됩니다. 그런데 선생님도 생각을 해보실 때, 예를 들어서 이만한 불상들이 있는데 과연 이 부처님을 낑낑낑 대고 밖에 나가서, 아무리 거기다가 모셔놓고 예불을 한다 해도 저 멀리 있는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야외용 불화, 야외용 예배대상으로 특별하게 만들어진 그림들이 바로 괘불이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전란과 소빙기를 맞아 먹고살기 어려울 때 괘불 등장
우리나라의 괘불은 학자에 따라서는 여러 가지 설들이 했습니다마는 현재 남아있는 괘불이라든가 아니면 기록, 이런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본다면 아마 임란(임진왜란) 이후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7세기에 이르러서 비로소 야외에 모시는 거대한 그림이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왜 하필 17세기인가 하는 것입니다.
말씀드렸듯이 한 120점쯤 남아있는데 1622년의 작품이 제일 오래됐고, 제일 늦게 된 것은 물론 20세기까지 있습니다. 근데 17세기, 이 시기에 왜 저렇게 거대한 그림들을 만들기 시작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17세기라고 하면 임진왜란이 끝나고, 정유재란이 끝나고, 17세기 전반의 병자호란, 이러한 거대한 전쟁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전쟁이 있었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다는 그런 얘기가 되겠지요.
그래서 이렇게 희생되신 분들을 위해서 아마 사찰에서 많은 재(齋)를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야외에 모시는 괘불이 나오지 않았을까, 그런 추정을 합니다.
또 하나는 뭐냐 하면 아마 오늘 여기 윤용혁 교수님께서도 와 계신데요, 역사 쪽에서 보면 조선왕조실록의 기록들을 쭉 보다 보면 유난히 17세기 때 여러 가지 재해가 굉장히 많습니다.
특히 아주 추워서, 날씨가 아주 추운 그러한 냉해도 있었고 홍수에, 전염병에, 이런 것들이 다른 때보다 유난히 많이 보이는 이런 시기입니다. 그런데 이 17세기라고 하는 시기를 역사학에서는 ‘소빙기(小氷期)’라고 부릅니다. 빙하 시대가 조그맣게 온 거예요. 그래서 이때가 되면 곡식도 잘 안 자라서 사람들이 먹을 것도 부족하고 병도 많이 걸리고 하면서 소위 소빙기라고 하는 이 시기를 맞아서 굉장히 살기가 어려웠다는 거죠, 많이 죽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이렇게 부처님께 의지하고 또 재를 지내고 또 재 지내려면 커다란 예배대상이 필요하고, 이런 여러 가지가 맞물려서 괘불이 발생했을 것으로 짐작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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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드린 것처럼 120여 점의 괘불이 남아있는데 가장 먼저 만들어진 1622년의 괘불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지금 마곡사, 아까 이런 괘불 보셨다고 그랬잖아요? 이게 몇 미터쯤 될까요? 그렇죠, 11, 2미터.
여기다가 걸면 한 부처님 반도 걸 수 없을 정도인데요, 처음에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괘불은 5미터가 안 돼요. 5미터 내외~ 그러니까 아마 여기 걸면 이 끝까지 하면 이렇게 걸릴 수 있는 그 정도의 그림입니다. 그래도 크죠? 작진 않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후에 17세기, 18세기 가게 되면 현존하는 불화 가운데, 괘불 가운데 제일 큰 게 아마 제 기억에 있는 법주사? 괘불이 14미터가 넘습니다.
초기에 만들어진 것보다 세 배 정도 되는 거예요. 이렇게 거대한 그림들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그리고 이때쯤 해서 여러 가지 의식을 하는 데 필요한 의식집들이 한꺼번에 나오기 시작해요.
영산재를 지낼 때 필요한 영산대회 작법절차(靈山大會作法節次), 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 이러이러한 재와 관련이 된 의식과 그런 일종의 텍스트가 이때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것과 괘불의 탄생이 거의 맞물려서 아마 17세기 가서야 처음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의견입니다.
괘불은 어떠한 부처님을 그렸는가에 따라 종류가 다양
이 괘불은 어떠한 부처님을 그렸는가에 따라서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석가모니부처님을 그리기도 하고, 아미타, 지장보살도 그리고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제일 많은 것이 소위 영산회상(靈山會上) 괘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산’하면 좀 그렇지만 영축산, 영취산 많이 들어보셨죠? 아마 인도에 가셨던 분들은 거기 순례 여행도 할 때 꼭 가는 그런 곳 중의 하나입니다.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그러한 장소인데, 불경 가운데 왜 법화경이라고 있죠? 법화경, 화엄경이 우리나라 2대 경전인데요, 그 법화경은 바로 영취산, 영축산에서 부처님이 설법하신 이야기를 모아놓은 거예요. 예, 모아놓은 그런 경전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굉장히 중요한 그런 장소 가운데 하난데, 그래서 영산회상이라고 한다면 영취산에서 모임, 즉 석가모니의 설법을 듣기 위해서 영취산에 모여 있을 때 모습을 그린 것, 주인공은 석가모니겠죠. 이런 그림이 현재 가장 많이 남아있고. 그밖에 비로자나부처님, 아미타부처님, 미륵부처, 노사나부처 이런 부처를 그린 거 또는 보살 가운데 지장보살을 그린 괘불에 이르기까지 많은 종류가 남아있습니다.
아마 영산회상 괘불이 한 80% 이상?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이것이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괘불입니다. 약 5미터 정도 되는데요.
작년인가요? 불교중앙박물관, 서울의 조계사에 거기에서 한번 걸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보니까~ 여기서 이렇게 우리가 정면에서 이 부처님을 바라보면 손이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죠? 너무 삐삐 말라 갖고 손이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아 이런 비례나 이런 게 잘 맞지 않는데, 괘불은 그런 걸 생각해야 될 것 같아요. 우리 시선으로 높이 있는 부처님을 보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 이렇게 평면으로 해놓고 슬라이드나 이런 데서 보는 비례하고는 좀 다르게 그려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감안하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그 괘불을 보시면 부처님의 자세는 딱 두 가지거든요? 앉아 계시거나 서 계시거나입니다.
초기에 만들어진 괘불들은 대개 이렇게 앉아 계세요. 그런데 이 그림 보면 아무도 없잖아요, 여기 딱 부처님 혼자. 그렇죠? 혼자만 있어요. 괘불이지만 꼭 불상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렇게 초기에 가장 오래된 괘불이 이러한 모습은 전각 안에 있는 부처님을 그냥 밖으로 내어서 그대로 그려서 모신다는 그런 의미를 갖고 있어요. 그러다가 나중에 밖에다가 10미터, 15미터, 이런 괘불들을 쫙 걸게 되면 앉아있는 부처님을 그리기가 어려워요. 그렇지 않을까요? 뭐 어마어마하게 폭이 들어가야겠죠. 그리고 이렇게 밖에 있는 부처님은 뭔가 우리가 이렇게 하나의 법회를 하거나 재를 지낼 때 마치 저~ 위에서 내려오는 것과 같은 그런 효과를 줘야만 해요. ‘아, 우리가 지금 모시는 이러한 법회에 부처님이 왕림을 하는구나~’ 하는 그러한 감동을 느낄 수가 있기 때문에 나중에는 전부 서 있는 부처님을 만들게 돼요. 그래서 앉아 계신 부처님일수록 시대가 올라가는 그런 괘불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괘불 만든 나라는 세 나라
자, 여기가 티벳입니다. 우리나라에 아까 120점 정도 괘불이 있다고 그랬는데요, 전 세계적으로 괘불을 만든 나라는 딱 세 나라예요. 한국, 하나는 티벳, 또 하나는 어디일까요? 몽고입니다.
옛날에는 중국의 그 중의 일부가 됐었겠죠. 한국, 티벳, 몽고, 이렇게 세 나라에서만 지금 괘불을 볼 수가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본다면 우리나라 괘불은 굉장히 불교미술사에서도 아주 중요한 그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거죠. 티벳 같은 경우는 우리처럼 걸어놓기도 하지만 지금 보시는 것처럼 아예 그냥 산에다가, 어마어마하게 크죠, 산에다 깔아놓거나 아니면 티벳 같은 경우는 바닥에다 모래 같은 걸로 그려서 법회가 끝나면서 싹 지워버리기도 해요.
우리처럼 이렇게 거는 그림으로 많이 남아있는 데가 별로 없습니다. 지금 괘불로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예불을 하는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있고. 괘불을 옮기려면 이것을 산까지 가져가잖아요? 지금 보면 둘둘둘 말린, 이게 괘불이에요. 괘불을 사람들이 메고 올라가는데 이걸‘ 괘불이운(掛佛移運)’이라고 합니다.
옮겨서 저쪽으로 가져간다, ‘이운’하는 건데, 우리나라에도 이런 괘불이운식이 있습니다.
혹시 참여해 보신 분이 있으세요? 괘불이 보통 어디에 있나요? 대웅전에 저 지저분한 것 막 두고 그러는 그 후불벽 뒤쪽에 모셔놓잖아요. 재를 지내려면 거기서부터 다 꺼내 와야 돼요. 그걸 괘불이운을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법회가 열리는 마당까지 갖고 오는데 주로 우리나라에서도 스님들이나 아니면 신도분들이 수십 명이 괘불을 옮기게 되는데요. 괘불을 옮길 때에 거기다가 손만 대도 무병장수한다 그래요.
신도분들이 막 가셔서 막 다투어서 괘불에다가 손을 대려고 하는 이런 모습도 가끔 볼 수가 있습니다.
티벳 같은 경우도 우리처럼 이렇게 걸어놓는 괘불들이 일부 있는데 우리보다는 크지 않아요. 그렇죠?
부처님께 공양물을 차리는 것처럼 괘불 앞에 공양을 차리고 야외에서 법회를 하게 됩니다.
공주지역에서 가장 연대가 오래된 갑사 괘불
자,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공주 지역의 괘불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공주 지역에 괘불이 세 점이 남아있는데, 그중에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것이 바로 갑사 괘불입니다.
갑사 괘불은 다 보셨겠죠? 2년에 한 번씩 하는 괘불 가운데 하나인데요, 볼 때마다 놀라실 것 같아요. 그 거대함과 또 아주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런 채색을 보고 감동을 느끼셨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이 갑사는 역사적으로 본다면 이미 삼국시대부터 갑사를 창건했다고 하지만 정유재란 때 완전하게 갑사가 다 없어져 버려요. 불에 타서 전소가 됩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있다가 한 7년 정도 흐른 다음 조선 후기에 다시 한번 갑사가 중창이 되는 이런 불사가 일어나게 되는데, 그래서 오늘날 갑사는 그 이후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갑사 갔을 때 뭐 좀 이상한 거 못 느끼셨어요?
탑이 없어요~ 왜 탑이 없을까요? (천진보탁, 바위에 있는...) 아~ 전설에서는 그렇게 했는데, 네, 조선 후기가 되면 우리는 사실 삼국시대 이럴 때 보면, 이런 전체적인 가람(伽藍, 절)의 배치에서 제일 중요한 게 탑이에요. 오히려 전각보다 더 크죠.
정림사지도 있고 또 미륵사지 이런 여러, 삼국시대에 들어가면, 들어가자마자 대웅전은 보이지도 않아요. 탑이 먼저 보이는 거예요, 왜냐하면 탑이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후기로 갈수록 탑의 중요성이 점점 줄어들고 뒤에 대웅전에 모신 부처님을 예배하는 그런 신앙으로 바뀌어 가게 돼요. 그래도 탑은 중요하잖아요. 근데 이렇게 갑사처럼 탑이 없는 사찰이 나타난다는 거죠. 이거는 왜 그러냐면, 이 배치도 특이해요. 옛날 사찰에는 모든 게 다 일직선에 다 있거든요. 그렇죠? 문도 탑도 전각도 강당도 다 일직선에 있는데, 조선 시대가 되면 중앙에 이러한 마당을 중심으로 모든 전각들이 이렇게 바라보게 돼요. 대웅전은 남쪽을 향하고 있지만 옆에 있는 전각들은 동향, 서향이에요. 이건 안 좋은 거잖아요, 네모나게 둘러싸는 이런 구성을 갖게 돼요. 이런 것을 사동중정형배치(四棟中庭型配置)라 그래요. 네 개의 동, 건물이 중정을 향해서 몰려 있는 거예요. 향하고 상관없이.
왜 이렇게 되는가? 의식의 공간이 되는 거예요, 조선시대 후반기에 가서. 그래서 여기서 영산재도 지내고, 수륙재도 지내고, 모든 전각들이 중앙으로 옮기는 이러한 구성으로 바뀌어 가게 됩니다.
조선 후반기에는 갑사처럼 탑도 놓지 않는 거예요. 송광사도 탑이 없죠. 바로 의식의 공간으로 변하게 됩니다. 갑사 개산대재 가보신 선생님들은 잘 아시겠지만, 이게 갑사에서 괘불을 걸 때, 개산대재 때 찍은 사진입니다. 앞에 괘불을 걸 수 있는 커다란 괘불대가 놓여 있고, 이렇게 주변에는 마치 대웅전에서처럼 불단을 차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여기에 괘불을 이렇게 올리면서 의식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괘불을 올릴 때는 주로 도르래를 써서 움직이게 돼요. 이 괘불이 거의 12미터가 넘거든요. 한 층에 한 4미터 정도라고 하면 3층이 넘는 그런 높이입니다. 이것을 아래에서부터 이렇게 올리면 마치 땅에서부터 부처님이 이렇게 위로, 이 도량에 나오시는 것과 같은 그런 느낌을 갖게 됩니다. 이렇게 괘불이 쫙~ 올라가면서 도량을 전체를 꾸미게 됩니다. 그럼 그 앞에 아까 말씀드린, 사동중정(四棟中庭)이라고 하는 그곳에 많은 분들이 모이셔서 마치 이 부처님을 모시고 예불을 드리는 것과 같은 이런 행사를 하게 됩니다.
갑사괘불은 삼신불
티벳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둘러메고 가는 것처럼 한두 사람이 옮길 수 있는 그런 유물이 아닙니다.
이것을 지금부터 한 400년 전에 만든 거예요. 얼마나 대단한 거예요, 지금도 이거 하나 만들려면 여러 가지 경제적인 여건, 또 제작 기간이 엄청나게 드는데 그 당시 지금보다 훨씬 더 열악했을 것 아니에요?
이거 아까 보셨나요? 갑사의 괘불은 이렇게 12미터 정도가 되는데요.
제일 중앙에는 거대한 세 분의 부처님이 앉아있는 이런 모습이 있습니다. 중앙에는 비로자나부처님, 그리고 오른쪽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이 계시고 왼쪽에는 노사나부처님이라고 하는 세 분의 부처님이 이렇게 표현이 되어있고요. 위에는 굉장히 조그맣게 여러 인물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세 분의 부처님 아래로는 양쪽에 두 분씩, 사천왕이 이렇게 두 분씩, 보살이 있고, 중앙에 꿇어앉아 있는 인물이 한 명 보입니다.
이것을 청문보살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 물어보는 거예요. 법은 어떤 것이고, 불교의 진리는 무엇이고, 하는 법화경, 화엄경, 여러 가지 청문하는 이런 보살들을 아래다가 그린 모습입니다.
그래서 이 갑사, 이 괘불은 저희가 뭐라고 부르냐면 ‘갑사 삼신불 괘불’, 그렇게 부릅니다. 즉 삼신 부처님을 모신 괘불이다, 연대가 1650년입니다. 아까 보셨던 가장 오래된 괘불에서 30년밖에 지나지 않은 굉장히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두 번째로 오래된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그런데 전혀 수준이 다르죠?
아까 거하고~ 그냥 부처님 한 분만 간단하게 그린 건데, 크기도 인물들도 그렇죠.
30년 시간 동안에 어마어마한 발전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삼신불 괘불인데,
이것을 그린 화가, 스님들이 주로 그리잖아요. 불화를 그리는 스님들을 화승이라고 부릅니다, 화승~ 그래서 화승 가운데 우두머리가 있어요. 그 우두머리가 수화승(首畵僧). 경잠이라고 하는 스님이 수화승이 돼서 그 아래에 여러, 해문, 수연, 응열, 해명, 항능, 이러한 여러 화승들을 거느리고 함께 그린 것이에요.
모두 몇 분이죠? 일곱 분이 12미터 짜리를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거기 모든 불화에는 아래 화기(畵記)라는 걸 갖고 있어요. 화기만 잘 읽으면 언제 어디서 무슨 그림으로 그려졌고 다~ 적혀져 있어요. 심지어는 그림 그릴 때 된장은 누가 시주했고, 간장은 누가 했고, 이런 것까지 나옵니다. 그런데 이러한 많은 사람이 시주해서 불화를 만드는데, 의외로 그것을 조성하는 기간이 굉장히 짧아요. 한 달밖에 안 돼요. 의외로 짧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림을 그릴 때 철저하게 분업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 이 그림을 그리려면 초가 있어야 돼잖아요. 그래서 초본을 그리는 분이 있고, 그다음에 어떤 분이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뭐, 예를 들어 응열스님 같으면 빨간색만 칠하는 거예요. 빨간색 딱 칠하고 물러서면 그다음에는 초록색 칠하는 분이 들어와서 칠하고, 그다음에 노란색, 뭐 이런 식으로 색채별로 하다 보니까 의외로 빨라요. 그래서 이러한 거대한 불화들을 그릴 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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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사 삼존불>
이 그림은 모두 스물다섯 폭의 천을 이어서 만들었어요. 바탕천을 12미터라고 했고, 이 가로 길이도 7, 8미터 정도되는 굉장히 큰 그림입니다. 그러면 이런 걸 한 폭으로 짤 수가 없잖아요. 보통 삼베나 비단을 짤 때 얼마나 해요? 그 폭이 아마 30센티? 그렇죠? 왜냐하면 베틀이 이만해서 이렇게 할 때가 제일 빨라요, 그렇죠? 큰 거를 짤 수 있는데, 7, 8미터나 되는 건 짤 수가 없어요. 그러기 때문에 불화는 항상 이렇게 폭을 이어서 만들게 됩니다. 근데 괘불은 너무 크니까 스물다섯 개를 다~ 바느질해 만드는 거예요. 이렇게 꼬맨 자국 보이시나요? 이렇게 하나하나 다실로 이어서 바탕을 만든 다음에 초를 그리고 색채를 넣고. 굉장히 어려운 그런 작품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 천을 쓸 수도 있지만 제일 많이 썼던 게 삼베입니다, 삼베가 좀 강하죠~ 그리기는 비단보단 안 좋아요. 비단은 곱기 때문에 그림도 섬세하게 잘 그릴 수가 있지만 삼베로 해야 돼요. 바람이 불고 이러면 비단이나 이런 약한 걸로 하면 찢어지기가 쉬워요. 그래서 괘불들은 거의 삼베를 써서 만들거나, 아니면 어떤 경우에는 삼베하고 비단을 섞어서 쓰기도 해요. 가운데는 삼베 쓰고 양쪽에는 비단을 조금 쓰는 경우는 있지만 거의 삼베를 써서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 보시는 것처럼 한 폭, 한 폭이 한 30센티 정도 해서 이렇게 하니까 이건 7, 8미터가 되는 거예요.
갑사괘불은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좀 전에도 잠깐 말씀드린 것처럼 이 그림은 중앙에 비로자나부처님, 양쪽에 석가모니부처님, 노사나부처님 이렇게 세 분을 중심으로 해서 많은 권속들을 표현한 그런 그림입니다. 아래쪽에는 말씀드렸듯이 사천왕과 청문보살, 위쪽에는 석가모니의 10대 제자와 여러 신들, 이런 분들이 설법하는 부처님들을 이렇게 둘러싸고 옹호하는 그런 형식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가 윗부분입니다. 윗부분에 보면 이렇게 조그만 집같이 생긴, 이런 게 위에 달려 있고 그 아래로 부처님이 이렇게 보이는데요. 이거는, 왜~ 그 대웅전에 가면 닫집(법당의 불좌 위에 만들어 다는 집 모형)이 붙어 있잖아요. 천계(天界, 늘 위의 세계)라고도 하고 우리가 보계(寶界,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라고도 부르는데, 처음에는 인도가 너무 더우니까 그런 데서 햇빛을 가리는 용도로 썼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권위 있는 인물들, 부처님이라든가 이러한 분들을 이렇게 상징하는 그런 의미로 사용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 위에는 이렇게 닫집 같은 것들을 그림으로 그려서 장엄(莊嚴)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또 부처님 두 분과, 그리고 제자, 제자 분들이 이렇게 쭉 둘러싸는 이러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쪽 가장자리에는 두 사람이 이렇게 있는데 뭔가 우락부락하게 생겼잖아요. 이런 분들을 금강신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부처님이나 여러 부처님께서 설법할 때 많은 사람들이 다 모여들게 돼요. 그래서 저~ 쪽에 있는 부처도 오고, 보살들도 오고, 그다음에 제자들도 모여들고, 그리고 이러한 모임을 옹호하기 위해서, 외호하기 위해서 많은 신들이 모이는데, 사천왕, 금강신, 뭐 이런 신들이 모여서 그런 것을 한꺼번에 그렸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금강신 있고 그다음에 여기 보살이 한 분 계시는데 여기 보시면 이 보살이 그 손에 정병이라고 하는 물병을 하나 들고 있고요, 여기에 있는 존자, 제자는 금으로 화려하게 문양을 넣은 이런 옷을 입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지금 누군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제자는 모두가 열 명이잖아요. 10대 제자. 그런데 요 아래쪽에 10대 제자가 또 다 등장을 하게 돼요. 그래서 이것은 그 외에 어떠한 귀중한, 그러한 제자를 그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반대쪽입니다. 반대쪽에도 나이가 드신 제자가 아주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또 여기도 정병을 들고 있는 보살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정병을 들고 있으면 관음보살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는 꼭 어떤 특정한 관음보살이라기보다는 중생들을 이 안에 들어 있는 그 물, 우리가 감로라 그러죠, 단 이슬과 같은 물로 이렇게 주어서 목마름을 없앤다는 그런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쪽에는 역시 금강신들이 함께 옹호하고 있는 그런 모습도 보살들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입니다. 그리고 그 위쪽에 10대 제자가 있는데 지금 보시는 것처럼 열 명의 제자가 나오는데요. 그중에 중앙에 보면 두 분이 서로 마주 보고 합장을 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쪽에 계신 분은 아마도 아난존자, 그리고 이쪽에 조금 더 나이가 드신 분은 부처님 제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았던 분이 가섭, 노가섭이라고 하는 가섭존자입니다. 그래서 아난과 가섭을 중심으로 해서 10대 제자가 모두 모여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그런 모습들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제 아래쪽입니다. 아래쪽은 말씀하셨듯이 여기에 천왕이 양쪽에 이렇게 있는데, 이 사천왕은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저 하늘, 동서남북의 네 하늘을 지키는 왕입니다. 동쪽 하늘을 지키는 왕은 지국천이라고 하고, 남쪽은 증장천, 북쪽은 다문천, 서쪽은 광목천, 이런 분들이 각각 하늘을 지키고 있는데 지금 여기 보시면 한 분은 비파를 들고 있고 한 분은 칼을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분은 잘 보이실까요? 저도 잘 안 보이는데요. 여기에 보면 이렇게 긴 막대 같은데 뭔가가 달려 있는, 그래서 이것을 번이라고 합니다, 당번(幢幡). 이렇게 왜 어떤 의식을 행할 때 매달고 이렇게 가는 거 있잖아요. 그런 게 당번입니다. 당번이고,
이쪽에는 손을 들어서 탑, 보이시죠? 탑을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쪽에 있는 분은 손에 빨간 게 있는데요, 이게 여의주예요. 여의주를 잡고 있고 한 손은 내려서, 여기도 잘 안 보이는데요, 이렇게 해서 커다란 용, 용을 한 손에 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각각 비파, 칼, 또는 탑이라든가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는, 이런 사천왕들이 이렇게 배치가 되어있는데, 원래 아마 사천왕에 대해서 조금 공부하신 선생님들은 다른 건 몰라도 탑을 들고 있으면 북방천이다,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요, 조선시대 후반기 불화에 와서는 북방천이 탑이 아니라 비파, 비파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오히려 탑은 광목천이 들고 있어서 고려시대까지 하고는 조금 달라지는 그런 모습들을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다음에 아래에 청문보살입니다. 이렇게 뒷모습을 보이게 하고 앞에 부처님을 향해서 뭔가 이렇게 청법을 하는 그런 인물들이 그려지게 되는데 이게 좀 이상하지 않아요? 보살이 있는데 광배(光背)가 앞쪽에 있는 것처럼, 원래는 뒤쪽에 있어야 되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이제 이런 식으로 그려지는 게 아주 특이합니다. 근데 여기에 그려지는 인물들은 어떤 때는 비구 제자, 제자형이 그려지고 어떤 때는 이렇게 보살이 그려지게 되는데요, 그래서 청문비구 또는 청문보살이 그려지게 됩니다. 조선시대 전반기에는 여러 법화경의 그림이라든가 또는 석가모니 그림, 이런 데에 청문 비구나 보살들이 조금씩 나타나는데 조선 후기가 되면 특이하게도 17세기에 그려진 괘불에 이렇게 청문하는 그러한 보살이나 비구가 그려져서 지금 부처님의 법회에 와서 부처님께 직접 법을 청하는 이런 모습을 훨씬 더 실감있게 표현을 합니다.
자, 이 불화와 같은 경우에는 괘불은 아래에 화기(畵記)가 적혀 있습니다. 이 불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여기에 적혀 있는 그런 화기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화기에 보면 제일 처음에 연대가 나와요. 뭐, 건륭 몇 년, 그다음에 어떤 그림을 그려서 어디다 봉헌했다, 갑사에다가 봉헌했다 하고 그다음에 이 그림을 시주한 사람, 이건 시주질(施主秩, 시주한 사람들의 명단)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시주질해서 그 명단이 쭉 나오고 그다음에 연화질(緣化秩, 특별한 불교 행사나 일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 연화질 해서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 그림을 만들었다는 거죠? 직접 그림 그린 사람, 그림 그릴 때 음식 해다 준 사람, 또는 그림은 부처님 그림이니까 이 굉장히 도량이 청정해야 돼요,
그림을 그릴 때. 그러면 옆에서 막 주문을 외워주는 분도 있어요. 그런 분들, 송주비구(誦呪比丘). 이런 것들을 적게 되는 게 연화질입니다.
연화질 가운데 이 그림을 그리신 분들, 화원, 화원, 아까 화승이라고 그랬죠, 화원질, 질이라는 것은 우리가 ‘질서’ 할 때 질을 쓰잖아요. 일종의 리스트, 그런 뜻이에요. 그 사람들을 쭉 나열하는 거예요. 그래서 시주질, 연화질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여기 보면 화원질(畵員秩)이 있습니다. 산인(山人) 경잠(敬岑) 비구(比丘), 누구 누구 누구 해서 모두 일곱 분이 이 그림을 그렸다는 그런 이야기인데, 제일 앞에 나오는 것이 아까 수화승이라고 그랬죠? 제자들을 거느리고 일을 하게 되면 수화승이 되는 거예요. 예. 그래서 경잠이라는 분이 이렇게 그림을 그렸는데, 이 경잠이라고 하는 화가는 이 그림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아요. 예갑사괘불 하나만 남아있고 그다음에 그 아래에 있었던 분들은 나중에 스승이 떠나가면 이인자가 일인자가 되고 그 아래에 있었던 사람이 올라가고, 그래서 그런 걸 이렇게 따져보면 어떤 그 지역에 있어서의 그 그림의 유파? 예, 이런 것들을 쉽게 알 수가 있겠습니다. 경잠이라는 분은 이 그림으로 보건대 17세기에 아마 이 충청도 지역에서 활동을 했었고 안타깝게도 이 그림 하나 밖에는 남아 있지 않아서 이분의 화풍이라든가 이런 것, 뭐 시간에 따라서 화풍이 어떻게 변천됐고 하는 것들을 알기는 굉장히 어려운 그런 형편입니다.
이게 갑사 괘불을 모셔둔 전각이 되겠죠. 그래서 보통 때에는 대웅전의 뒤에 이렇게 모셔놓다가 국보가 되거나 보물이 되거나 하면 전각을 짓게 되죠. 그래서 요즘에는 이런 식으로 괘불만을 봉안하는 이런 전각들을 지어요. 이걸 옮기려면 보통 무거운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아래에는 도르래 같은 걸 깔아 갖고 바퀴 달아 갖고 이렇게 쭉 빼서 걸었다가 다시 넣고 하는 이런 방법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괘불은 그냥 돌돌 말아서 그냥 딱 놓는 게 아니라 반드시 괘불궤라는데 집어넣습니다. 괘불궤는 보통 이렇게 나무로 옛날부터 만들게 되는데, 그 괘불을 둘둘둘 감아 갖고 넣을 수 있는 그런 크기로 만들게 되겠죠. 근데 이 갑사 괘불 같은 경우에는 그 겉에 이런 종이가 하나 붙어 있었어요. ‘갑사괘불연기(甲寺掛佛緣起)’라고 해서 이 갑사 괘불이 순치(청나라 3대 황제, 강희제의 아버지) 7년인 1650년에 만들어졌고 그다음에 삼신불, 삼신불과 육방불과 보살 열 한 분을 한꺼번에 그리고 또 10대 제자, 사천왕, 네 금강(사금강), 아까 양쪽에 둘씩 있었죠? 금강을 그린. 그래서 모두 38분의 이런 도상들을 그린 그림이다라는 걸 적었는데요. 근데 그다음에 뭐라고 나오냐면 이 그림이 크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괘불의 크기가 나오고, 그리고 화가, 함께 만든 사람들, 시주한 사람들, 또 그림 그린 사람이 나오는데 경잠 등 9인이라고 나왔어요. 근데 사실 우리 아까? 일곱 명이었잖아요. 그래서 무슨 착오가 있었는지, 분명히 확인은 일곱 명이라고 되어있는데 여기는 아홉 명이라고 그랬는데 이거는 후대에 쓴 거예요,
대정(大正, 다이쇼)연감에. 일제시대 때 썼기 때문에 아마 나중에 이걸 베껴 쓰면서 조금 착오가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갑사 삼신불, 비로자나, 석가모니, 노사나, 아까 제가 설명하는 게 확 넘어간 것 같은데요, 이걸 왜 삼신이라고 하냐면 비로자나부처님을 우리가 법신이라고 부릅니다, 그렇죠? 불교의 교리, 이것을 부처로 표현한 거예요. 법. 그다음에 석가모니는 부처님 가운데 유일하게 인간으로 태어났던 분입니다. 나머지는 다~ 만들어 낸 거예요. 우리 필요에 따라서. 그래서 유일한 부처님이거든요. 그래서 화신, 인간으로 화해서 나타났다 해서 화신 석가모니라고 부릅니다. 노사나불은 화려하게 관을 쓰고 있는 그런 모습으로 표현이 됐는데 이분은 보신이라고 부릅니다. 보신은 좋은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응답으로 그에 대한 그런 결과적으로 부처로 태어난 사람이에요. 보답을 받아서. 이걸 보신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삼신이라고 하면 법신 비로자나, 화신 석가모니, 보신 노사나, 이렇게 세 분. 그래서 이렇게 세 분을 모신 것을 삼신불, 삼신불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신원사 괘불은 노사나괘불
자, 신원사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갑사라든가 신원사 모두가 마곡사에 지금 말사로 되어있는 그런 사찰들입니다. 물론 이 신원사도 기록에 의하면 백제시대에 이때부터 창건이 됐다고 얘기를 하지만 아마 지금 남아있는 이러한 건물이나 이런 여러 가지를 본다면 나중에 고려 때 한 번 중건을 했고 그다음에 조선시대 오면서 새롭게 모든 건물들이 지어진 그런 곳입니다.
신원사 하면 제일 먼저 좀 다른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중악단이 있잖아요. 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계룡산의 산신을 모시는 중악단이 있는 아주 중요한 그런 사찰입니다. 그런데 신원사에는 1664년에 만들어진 괘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역시 크기는 한 12미터 정도 되는 굉~장히 큰 작품입니다.
이 신원사 같은 경우도 국보로 지금 지정이 되어있고, 얼마 전에 국립박물관에서 한번 전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신원사 괘불은 갑사하고는 전혀 다르죠, 생긴 것이, 그죠? 굉장히 다릅니다.
자, 신원사 괘불은 노사나 괘불입니다. 노사나불이 무슨 신이예요? 보신, 그렇죠? 보신 노사나불을 그린 괘불입니다. 노사나불 부처님이란 말이에요.
부처님이 이렇게 관도 쓰고 두 손을 밖으로 벌리고 이제까지 우리가 보던 부처님하고 너무 다른 거예요. 그렇죠? 자, 부처님들이 다 서 있는 모습으로 변하게 돼요. 갑사에서는 세 분이 다 앉아있는 그런 모습이 있었지만 이렇게 크기도 거대해지면서 이제 서 있는 입상의 부처님을 그리게 됩니다.
신원사 부처님은 1664년입니다. 갑사보다는 14년 정도 늦게 그려졌어요. 공주처럼 이렇게 국보가 많은 괘불이 있는 곳이 없어요. 지금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데 요즘에 저희가 문화재청하고 지정조사를 다니고 있는데요, 전국의 120개 괘불 가운데 지금 국보로 된 게 한 서너 점밖에 안 돼요. 그래서 국보를 조금 더 지정하자~ 10점을 골라서 지정조사를 하고 있는데, 마곡사는 아직까지 국보가 안 됐죠. 국보로 지정이 될 수 있는 그림 가운데 하나입니다. (방청객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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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사 노사나불>
이 그림은 수화승 응열과 여러 화승들이 그렸는데 아까 응렬 이름 들어보지 않았어요? 아까 그쪽에서는 첫 번째가 아니라 한 너덧 번째 나왔던 분이세요. 그분이 십 몇 년 동안 이렇게 자라신 거예요. 그래서 수화승이 되셔서 그림을 그렸던 것이 바로 이 신원사 괘불입니다. 이 그림도 11미터 정도가 되는데 여기서는 열아홉 폭을 이어서 그렸습니다. 아까는 스물다섯 폭인데, 왜냐하면 그건 세 명을 그렸잖아요. 그러니까 옆에 폭이 조금 넓은 거예요. 여기서는 한 분이니까. 이렇게 폭이 한 열아홉 정도로 되어있습니다.
신원사에 가면 노사나 괘불을 모시는 전각입니다. 여기에도 중앙에는 이렇게 새로 모사를 한 거죠, 그림은 소중하니까 담아서 보관을 해야 되고, 전각의 중앙에는 그걸 그대로 똑같이 하고 이 역시 뒤쪽에 이렇게 괘불이 나올 수 있는 이런 공간을 마련을 해서 괘불을 걸 때 이렇게 끄집어내는 이런 구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 신원사 괘불은 모두 열아홉 폭, 그래서 한 폭에 마찬가지로 한 34.5센티, 그런데 삼베로 이을 때 하나의 원칙이 있습니다. 뭐냐 하면은 부처님 얼굴을 중간으로는 잇지 않아요. 부처님 얼굴인 중앙을 놔두고 옆을 이렇게 잇는 거예요. 감히 이렇게 부처님을 중앙을 이어서 쓰지 않습니다. 폭을 쓸 때 중앙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신원사 괘불은 노사나불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이걸 왜 노사나불이라고 부르느냐~? 바로 여기 글씨가 쓰여 있어요. 네, ‘圓滿報身盧舍那佛’ 예, ‘원만보신노사나불’ 그래서 이 부처님은 생긴 건 꼭 보살 같은데, 그죠? 보살 같은데 관을 쓰고 화려하게 옷도 입고, 보살 같지만 분명하게 부처님을 그린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특이하게도 두 손을 이렇게 밖으로 내어 보이고 있어요. 이런 것을 우리가 흔히 그냥 ‘설법인’, 설법할 때 쓰시는 그러한 손의 모습이라 해서 설법인이라고 부릅니다.
설법인을 하고 장엄을 하고 있는 노사나 부처님을 그린 것. 예, 그렇게 간단하게 말씀드릴 수가 있고 주변에 보면 굉장히 많은 인물들이, 부처님은 엄청 크게 그렸지만, 인물들은 조그맣게 해서, 마치 층으로 몇 층을 쌓아 올리듯이 양쪽으로 해서 많은 권속들을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 보면은 특이한 게요~ 여기서 빛이 오세계, 오세계에 빛이 부처님을 중심으로 해서 전~체적으로 퍼져나가고 있어요. 그거는 이 노사나불이라고 하는 부처는 비로자나랑 같은 몸이에요. 비로자나, 노사나. 같은 몸이거든요. 하나는 법신이고 하나는 보신인데, 비로자나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할 때 ‘광명의 부처님’ 그렇게 불러요. 빛의 부처. 비로자나가 바로 빛이 온 세상에 가득하다, 그런 뜻이에요. 빛의 부처님이기 때문에 이렇게 빛으로 광명을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앙에 노사나불이 설법인을 하고 광배에 보관을 쓰고 있고 많은 화불들이 장엄을 하고 있는 그런 모습입니다.
지금 그냥 보시더라도 화려하고 정말 너무너무 아름다운 그런 그림입니다. 이 중앙의 얼굴은 전부 금이에요. 11미터나 되는 그런 그림에 부처님 얼굴만 해도 1미터가 넘지 않겠어요? 금으로 그린 거예요. 얼마나 정성스럽게, 정말 대단한 그림을 만들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자, 본존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노사나불입니다. 노사나불은 그 유명한 화엄경의 주불이에요. 법화경의 주불은 석가모니구요 화엄경의 주 부처님은 노사나, 노사나부처님이십니다.
말씀드린 대로 깨달은, 깨달은 그러한 것에 의해서 부처의 몸을 받은, 그죠? 보답으로 받은 몸이다 해서 보신이라고 우리가 흔히 보신불이라고 부르는데, 이 노사나불은 따른 부처님하고 조금 모습이 다릅니다. 항상 설법인을 하고 있어요. 양쪽을 이렇게 두 손을 벌리고,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거의 대부분이 대관보살형이라고 하는데요, 보관을 쓰고, 부처님은 보관 안 쓰시잖아요. 몸에 주렁주렁 안 다시잖아요. 왜 그럴까요? 깨달으신 분이기 때문에 속세를 벗어난 거예요, 이미. 그래서 부처님은 뭐 이런 거 주렁주렁하는 거 안 하거든요? 근데 보살은 바로 그 직전의 단계이기 때문에 세속의 인물입니다. 우리처럼 귀걸이도 하고 목걸이도 하고 이렇게 나타나시는 그런 모습이라서.
이거는 이렇게 관을 쓰고 마치 보살처럼 하고 있다 해서 대관보살형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여기 보니까 아까 왜~ 국보로 지정됐던 그 송광사 팔상도, 그 중의 하나인데 이런 그림이 있습니다. 이거는 뭐냐 하면은 석가모니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시고 부처가 되는 순간을 표현한 거예요. 근데 그때 모습이 보관을 쓰고, 두 손을 양쪽으로 벌리고, 또 장엄을 하고 있는 이런 모습이죠. 그래서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을 순간에는 바로 노사나불의 모습으로 표현이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이것도 노사나불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신원사 노사나부처님처럼 괘불에 보면 거의 같지 않아요,
이거? 수덕사에 있는 건데요. 무려 한 9년 후에 요 부처 만든, 아까 누가 그림을 그렸다고 했죠? 응열. 그분이 그린 거예요. 그분이 아마 이 그림 그리고 나서, 야, 너 그럼 우리 절에도 와서 좀 하나 그려줘라~ 그런 주문을 받고 아마 수덕사에 가셨을 겁니다. 그래서 옛날에 그렸던 그림과 굉장히 유사한 그림을 수덕사에 이렇게 모셨습니다. 천안 광덕사, 이거는 물론 이제 시대가 조금 뒤입니다만 여기도 보니까 보살형으로 되어 있고 두 손을 이렇게, 역시 노사나불입니다. 여기 흥국사, 여수 흥국사입니다. 여기도 보면 관을 쓰고 두 손을 이렇게 옆으로 벌린, 그래서 이러한 것들이 노사나부처님입니다.
어떻게 보면 신원사에서 처음으로 노사나부처님을 주인공으로 해서 괘불을 만든 다음에 이러한 영향이 수덕사, 광덕사, 그다음 18세기, 이런 흥국사 괘불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이 이렇게 퍼져나갔다고 볼 수 있어서 그 시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그림입니다.
(방청객 : 아까 그 세 점 다 보물이죠? 광덕사 괘불, 수덕사 괘불...) 네. 다 보물, 국보입니다. (거기에 네 점 있다는데 노사나불이 저거인 거죠~) 네~
자, 그러면 여기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표현이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중앙에는 노사나부처님. 그렇죠? 노사나부처님이 있고, 옆에 10대 제자가 나오고 흰옷을 입고 있는 분이 관음보살, 석장을 들고 계신 분이 지장보살이 표현이 되어 있고 아래에는 사천왕도 있고 보살들이 여러 명 이렇게 표현이 되었는데요, 가운데 조그맣게 그려진 분이 또 일광보살, 월광보살이라고 해서 해와 달, 해와 달을 상징해서 보살에 이르기까지 여러 보살들과 호법신들이 둘러싸고 부처님의 그런 설법을 찬탄하는 이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방청객 : 불화의 색채의 차이에 따라서 시기가 나눠지는가요?)
조금씩 차이는 있습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불화는 전각에다가 그림 그리는 걸 뭐라 그러죠? 단청이라고 부릅니다. 단은 붉을 단 자고, 청은 푸를 청 자. 가장 기본적인 색깔이 붉은색과 녹색이에요, 불화는. 시대에 상관없이 그렇게 하는데, 이것이 어떻게 어떤 색깔로 표현되는가, 조금조금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단청입니다. 불화의 색은~
자, 다시 돌아가서, 여기 원만보신노사나불이 있고 여기 10대 제자, 여기가 아난존자, 가섭존자가 되겠죠? 나머지 제자들, 그리고 많은 보살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다 이 사이로 이렇게 빛이, 그죠? 빛이 이렇게 방사되는 그런 굉장히 독특한 형상을 갖고 있습니다.
위에 보시면 10대 제자입니다. 10대 제자가 이렇게 다섯 분씩 모여 있는데, 가장 젊은 분이 아난존자, 나이 드신 분이 가섭존자입니다. 10대 제자 같은 경우에는 불화에 열 명이 다 나올 때가 있고 아니면 그림이 작거나 두 분만, 아난, 가섭, 조금 나올 때는 네 명, 여덟 명, 이렇게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다 10대 제자를 상징하는 그런 그림들입니다.
그다음에 아까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있었는데요. 관음보살은 이렇게 한 손에는 정병을 들고 계시고 머리에는 반드시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그죠? 그래서 항상 짝꿍이에요, 같이~ 그래서 관음보살은 이렇게 모시고 있는데, 관음보살이 흰옷을 입었어요. 이런 관음을 백의관음이라고 부릅니다. 백의관음은 뭘 상징하냐면, 병을 고쳐주고 어린아이를, 득남, 신앙, 이런 것들을 상징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지장보살인데요. 지장보살은 항상 여의주와 석장을 들고 있습니다. 지옥에 빠진 중생들을 구제해주시는 분이 지장보살이잖아요? 지옥에 가야 되니까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석장을 들어요. 석장을 들고 이 여의주라고 하는 것은 여의, 뜻대로, 그죠? 뜻대로 원하는 걸 다 들어주는 구슬이에요. 그래서 모든 사람의 이런 소원을 들어주는 그러한 보살이라고 볼 수 있어서 우리나라에서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2대 보살이라고 불러요. 그래서 가장 많이 신앙 되는 보살 가운데 한 분입니다.
그다음에 사천왕이 있고 그다음에 위에 있는 분들은 범천과 제석천이 입니다. 형태는 보살처럼 생겼지만 이분들은 신중이에요. 신중. 범천은 뭐냐 하면 이 세상을 창조한 신, 이 세상을 만든 가장 최고의 신을 범천이라고 부릅니다. 브라흐마고, 그다음에 제석천은 인드라~ 그렇게 부르는데 모든 신들의 우두머리, 그래서 모든 신은 다 제석천 아래에 있는 거예요. 그래서 가장 대표적인 이런 브라흐마와 인드라를 이렇게 배치를 하고 있 습니다.
(방청객 : 제석천과 범천의 차이는~?) 그냥 구분 잘 못 하시는데요, 이렇게, 이렇게 제3의 눈이 있어요. 세로로 눈이 하나 더 있어요. (방청객 : 아~) 삼목. 그래서 이렇게 눈이 있는 게 보통은 제석천이라고 그러고 경전에 보면 제석천은 부처님의 오른쪽에 선다. 부처님의 오른쪽. 그런 거 갖고 구분을 하고요. 그리고 둘이 만약 표현될 때 약간 차이가 있다면 범천은 조금 더 남성스럽게, 제석천을 조금 더 여성스러운, 그렇게 차이를 둬서 표현하는 것도 있습니다.
자 가운데 아까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있었다 그랬잖아요~? 그래서 일광, 월광은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일광은 붉은 해, 월광은 하얀 달인데 이게 보이세요? 토끼가 절구를 찍고 있어요. ㅎㅎㅎ~ 여기 여기, 그렇죠? 여기에 달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해와 달을 들고 있는 일광, 월광보살도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 그림은 갑사 그림을 그릴 때 몇 번째, 아까 네 번째로 나왔던 응열이라고 하는 스님이 그동안 실력을 쌓고 쌓고 해서 우두머리가 된 거예요. 그래서 이 스님이 수화승이 돼서 그린 첫 번째 그림입니다. 그래서 이 응열이라고 하시는 분은 17세기 후반에 충청지역에서 활동하던 화승이었는데 이런 대규모 괘불들만 많이 그렸어요. 갑사 괘불 그렸죠? 그다음에 신원사 거 그렸죠? 그다음에 아까? 수덕사까지 이런 아주 큰 그림들을 많이 그렸던 그런 분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우두머리 화승이 돼서 이런 불사를 이루어갔던 분입니다. 갑사, 신원사, 수덕사. 어떻게 보면 이거는 경잠이라고 하는 분이 우두머리였잖아요. 응열이라고 하는 분의 특징은 바로 여기서 두 작품에서 더 잘 드러난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마곡사 괘불은 석가모니 괘불
이제 마곡사입니다. 마곡사는 잘 아시는 것처럼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입니다. 삼국시대 후반기에 창건이 됐다고 하고 고려 때 보조국사가 중창을 하게 됩니다. 마곡사는 특이하게도 이렇게 두 군데로 나눠져 있잖아요, 영산전 구역이 하나 있고 대광보전과 대웅전 권역이 있는데, 영산전의 현판을 세조가 내렸다는, 조선시대 전기의 왕실에서 굉장히 관심을 갖고 있었던 이런 사찰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것도 물론 임진왜란을 맞아서 소실이 다 되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전각들은 대개가 17세기 이후의 건물들입니다. 마곡사 괘불도 국립박물관에서 전시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1687년에 조성이 되었는데 지금 한 10.65, 역시 크죠. 10미터가 넘는 거예요, 세 점이. 그런데 갑사 게 제일 컸고 신원사 게 조금 작았고 이게 조금 작은, 비슷비슷한 그런 크기입니다. 그런데 이때 전시를 하면서 이걸 뭐라고 냈냐 하면 ‘꽃으로 전하는 가르침’ 이렇게 해서 제목을 적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마곡사 부처님은 꽃을 들고 있는, 예~ 꽃을 들고 있는 부처님이세요. 보이시죠? 예, 화려하게 관을 쓰고 꽃을 들고 있습니다. 이게 국립박물관 2층에서, 올라가서 이렇게 찍은 사진인데요. 정말 얼마나 대단한 그림들이었는가를 이렇게 보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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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 석가모니불>
이 마곡사 부처님도 큰 법회가 있을 때 걸어놓고 모시는 그런 괘불입니다. 뒤로 전각이 대광보전이잖아요~? 대광보전을 훌쩍 넘는 굉장히 큰 괘불입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운집할 때는 이렇게 조그만 그림 갖고는 다 볼 수가 없는 거예요. 이렇게 후에 만들어진 괘불들은 거의 10미터가 넘는 아주 거대한 그림으로 그려지게 됩니다.
이 마곡사에는 지금 대광보전 앞에 유명한 고려시대 탑이 있습니다. 여기 보시면 이게 새로 만든 괘불대예요. 이렇게 높이 대를 세우고 거기다가 그림을 거는데. 그런데 마곡사 앞에 보면 이렇게 조그만 깨진 돌이 남아 있어요. 이것이 바로 옛날에 괘불을 걸었던 지주의 흔적입니다. 여기에 괘불을 걸었다면 아마 이런, 그렇죠? 예. 그래서 우리가 지금 사찰에 갔을 때 괘불 지주가 이렇게 쌍으로 있잖아요? 간격을 알면 그 사찰의 괘불 크기를 알 수가 있어요. 적어도 폭, 그렇죠?
이 마곡사 괘불은 석가모니 괘불입니다. 지금 제가 세 점을 보여 드리는데, 갑사 괘불은 삼신불, 신원사는 노사나불, 마곡사는 석가모니 괘불입니다. 그런데 이상하네~ 여기도 보관을 쓰고 보살처럼 하고 있는데 이건 왜 노사나가 아니지? 그렇죠? 네~ 좀 이따가 궁금증을 풀어드리겠습니다.
자, 마곡사는 석가모니 괘불인데 1687년, 세 점 가운데는 연대가 조금 늦지만 그래도 괘불 가운데 굉장히 빠른 그런 작품 중의 하나입니다. 이것은 수화승이 ‘능학’이라고 하는 분이 수화승으로 여러 화승들과 함께 조성을 했는데요. 크기가 10미터 정도 되지만 이 삼베를 스물한 폭이나 되는, 이렇게 많은 폭을 이어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네, 지금 보시면 스물한 폭을, 사실 이걸 잇는 건 너~무너무 힘들어요. 지금도 이 괘불 같은 것을 모사도를 많이 하거든요. 혹시라도 이게 어떻게 되거나 하면 그걸 새로 해야 되니까 모사를 많이 하는데, 제일 힘든 작업 중에 하나가 바탕천을 마련하는 거예요. 이거 바느질을 하실 수 있는 분도 많지도 않고, 가로 폭만 해도 엄청나기 때문에 이걸 그대~로 잇기가 참 쉽지가 않아요. 돈도 엄청나게 들어가고. 이런 그림 하나씩 그린다는 게 보통 작업이 아닙니다.
지금도 그런데, 옛날에 400년 전에 정말 어땠을까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불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방청객 : 재봉틀도 없는데~) 그러니까요. 요즘에도 다 손으로 해야 돼요. (방청객 : 아~) 그리고 제일 많이 하는 게 명주실로 해요. 명주실이 제일 튼튼하다 그 바느질하는 장인들도 별로 없어요. 예. 지금 보시면 이 부처님은 석가모니부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화부 있는 보관을 쓰고 계시고, 화려하게 보살처럼 장엄을 하고 있는데 좀 다른 점이 있다고 하면 꽃을, 커다란 연꽃을 하나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아니, 부처님이 저렇게 꽃 들고 있는 것도 있나? 부처님은 아까 아무것도 안 들고 아무 장식도 안 하고 있다 했는데~’ 그런데 우리가 이 부처님을 석가모니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그림은 너무너무 중요한 게 뭐냐면 인물 하나하나마다 이름이 다 적혀 있어요. 명패가. 네. 그래서 석가모니, 요기 석가모니 광배, 이렇게 보면 요기 빨간 거 보이시죠? 요게 다 명패예요, 이런 게, 요게. 그래서 여기에 보면 ‘천백억화신석가모니불(千百億化身釋迦文佛)’이라고 딱 제목을 적어놓은 거예요. 아까 원만보신노사나불(圓滿報身盧舍那佛)이었던 것처럼 여기는 천백억화신인 석가모니부처님이다. 그래서 아~ 이게 석가모니부처님을 그린 것이라는 것을 여기서 확인할 수가 있겠습니다. 자, 그런데 부처님이 연꽃을 들고 있단 말이죠.
(방청객 : 용화수하고 연꽃하고 같은 날이예요?)
다릅니다. 용화수는 미륵이 들고 있고요, 용화수는 상상의 꽃이에요. 실재하는 연꽃과 같은 것이 아니라 다릅니다.
이것은 연꽃인데, 그러면 도대체 왜 석가모니께서 이렇게 연꽃을 들고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해석을 할 수 있는데, 요즘에 가장 일반적인 해석이 바로 염화시중(拈華示衆). 염화시중의 미소는 다 아시잖아요. (방청객 : 예~) 예, 거기에서 나온 그런 모습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염화시중의 미소라는 것은 일반 법화경이나 화엄경 이런 데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 이야기가. 그리고 선종, 선종의 그런 경전, 이런 책에 잠깐 나오는데,
다 아시는 것처럼 어느 날 석가모니께서 대중들을 모아놓고 설법을 하려고 영산회법상에 오르시게 돼요.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꽃비가 막 내려요. 꽃비가. 석가모니는 아무 얘기도 안 하면서 땅에 떨어진 꽃을 이렇게 하나를 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줍니다. 그때 사람들이 ‘저게 뭐지?’ 다들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의아해서 이렇게 있는데 가섭만이, 노가섭만이 빙그레 웃었다 그러잖아요. 이걸 갖고 우리가 이심전심, 그렇죠? 알아차린 거예요, 부처님이 하려고 하는 말을. 그래서 꽃을 들어서, 꽃을 들어서 미소를 지었다해서 염화입니다. 그래서 이 꽃을 들고 있는 부처님을 바로 이러한 염화시중을 상징하는 염화불이라고 불러요. 그래서 석가모니, 여기 마곡사 석가모니불은 바로 염화불을 그린 이러한 그림이다 이렇게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보관을 쓰고 장엄을 하고 있는, 역시 대관보살형의 그런 모습을 하고 계시는데요, 그래서 절대로 보살이 아니라 부처님인 거예요. 왜냐하면 부처님도 득도에서 그 순간을 딱 그 큰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는 다 보살의 모습이었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보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아까 명패가 하나하나 달려 있었다 그랬는데요, 이러한 부분들이 명패입니다. 부처에게는 ‘좌보처 자씨보살’이라고 적혀 있고 이쪽에는 ‘우보처 제화갈라보살’, 이렇게 적혀 있어요. 이상하다?
석가모니의 좌우 협시(脇侍, 부처를 좌우에서 모시는 두 보살))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되어야 돼요.
그래서 이쪽이 문수, 이쪽이 보현이예요. 자씨와 제화갈라예요. 이상하잖아요~
이거는 뭐냐 하면 이렇게 석가모니, 제화갈라, 이렇게 셋이 결합이 된 이러한 것을 수기삼존(授記三尊)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왜 수기를 준다고 그러죠. 그러잖아요? 그런 것처럼 석가모니는 누구에겐가 수기를 받아서 부처가 됐어요. 석가모니는 또 누구에겐가 수기를 줘요. 부처가 이렇게 이어져 내려오는 거예요. 그 수기를 준다고 그러거든요? 석가모니에게 수기를 줬던 게 제화갈라불이예요.
이분이 석가모니에게 ‘너는 나중에 부처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을 하는 거죠.
석가모니가 나중에 돌아가시면 그다음에 부처가 누구죠? 미륵이잖아요. 미륵이 자씨예요. 미륵을 자씨보살이라고 불러요~ 자유롭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석가모니가 언제 분이시죠? 지금부터 한 2500년 전에 태어나셨잖아요. 기원전 6세기에서 5세기를 살았던 분이에요. 그때가 아마 공자? 중국에서 공자, 이런 분들이 활동했던 그 시기에 인도에서 태어나신 분이거든요? 그 석가모니부처님이 80세를 살고 돌아가셔요. 인간이기 때문에~ 80년을 꼭 살았거든요. 근데 그다음에 부처가 와야 돼잖아요? 아직 안 온 거예요. 그다음에 미래의 부처가 미륵인데 얼마 걸리죠? 다시 오실 날까지? (방청객 : 50억 ~천년~ 50억~) 좀 헷갈리셨어요, 다 섞였는데, 56억 7000만 년, (방청객 : 네~ 그러니깐요~) 56억 7000만 년이 지나야 미륵부처가 오는 세상이 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미래불인 거예요, 언젠가 미래에 우리에게 오는. 근데 지금 몇 년 지났어요? 2500년밖에 안 지났어요. 56억 7000만 년 마이너스 2500 하면 앞으로 얼마 후에 미륵부처가 오시는가, 그렇죠? 엄청나게 먼 거예요. 그래서 자씨는 미륵이고 제화갈라는 과거 부처예요. 제화갈라가 중앙에 있는 석가에게 수기를 줬고, 석가모니가 미륵에게 ‘네가 내 다음 부처해라’ 했고, 그래서 이런 것을 수기삼존이라고 부릅니다.
근데 여러 선생님들 주변에 아주 유명한 수기삼존 불상이 있어요. 그 유명한? 뭘까요? 서산 마애불입니다. (방청객 : 아~) 서산 마애불이예요. 그래서 서산 마애불 중앙에 큰 부처님이 계시잖아요. 그리고 이쪽에? 제화갈라보살, 이쪽에? 반가사유미륵. 미륵, 석가, 제화갈라예요. 그게 수기삼존이에요. 그래서 이쪽 지역에서 옛날 백제 때부터 수기삼존, 이런 신앙이 있었던 거죠. 그것이 여기까지 이어지게 됐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렇죠?
보현보살, 문수보살, 이분들이 바로 석가모니의 두 협시(脇侍)인 거죠, 원래, 그렇죠?
문수, 보현, 그다음에 요기 아까 요기 누구죠?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분은 관음이죠. 관음보살의 짝궁은 대세지보살. 이렇게 여러 보살들을 또 화려하게 표현을 했습니다.
아까 용화수 얘기를 하셨는데요. 용화수는 말씀드린 대로 상상의 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요. 근데 우리가 가끔 보면 미륵부처님이 뭔가를 들고 있는 경우가 있거든요. 연꽃봉우리같이 생긴 거. 이런 것들을 그냥 용화수 일 거다. 용화수 열매, 이렇게 짐작을 합니다. 여기 연꽃입니다. 여기 옆에 역시 많은 아난존자, 젊은 아난존자와 제자들, 그리고 노가섭, 가섭과 제자들이 있고 그다음에 부처님들도 계시고 가장자리에 이렇게 아주 우악스럽게 생긴 이런 분들이 있잖아요~ 이런 분들을 팔부중(八部衆)이라고 불러요. 사천왕의 부하, 호법하러 온 거예요. 호위하러 온 그런 인물들입니다. 모든 이런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여기 석가모니부처님 계셨죠~? 근데 위에 두 부처님이 계신단 말이에요. 이분은 누군지 알겠죠, 이제? 노사나부처님입니다. 그리고 이분은 두 손을 이렇게 하고 있어요. 비로자나잖아요. 그럼 비로자나, 석가, 노사나, 뭐라 그랬죠? (방청객 : 삼신불~) 삼신불. 아~ 이제는 다 100점 맞으시겠어요~ㅎㅎㅎ~ 그래서 삼신불도 표현하면서 석가모니가 주존이 된 그런 그림입니다.
자. 아래는 역시 사천왕이 있는데요. 위에 비파 들고 있고, 칼도 들고 있고, 당, 당번, 탑, 또 용과 여의주. 대개 그래서 조선 후반기가 되면 이렇게 딱 정해져 있어요. 이쪽에는 비파와 칼, 이쪽에는 탑, 그리고 용과 여의주 해서 거의 사천왕들이 호법신으로 좌우로 둘러싸게 됩니다.
여기에도 화기가 남아있습니다. 화기에 보면 아까 제가 ‘연화질’이라고 말씀드렸죠. 시주질은 시주자 리스트, 연화질은 이 그림을 그리는 데 직접 참가한 사람들 리스트입니다. ‘연화목록’ 또는 ‘연화질’ 하는데 여기 보면 증사, 증명해주는 스승이다. 불교 회화거든요? 불교 회화는 내 맘대로 못 그려요. 경전에 있는 대로 그려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이게 정말 석가모니의 모습을 잘 표현했는지, 예를 들어 문수보살은 여의주를 들고 있고 보현은 연꽃을 들고 있는데 이게 경전의 내용에 맞는지 이런 걸 증명해주는 사람이에요. 이걸 증사라고 합니다. 그다음에 ‘지전’이라고 하면은, 그림 그릴 때 여러 가지 필요한 물건들을 다 제공해주고 일종의 총무같은? 그런 일을 맡아 해주는 분이 지전, 지킬 지 자에다가 전각 전 자. 그것을 다 관리하는 사람이겠죠?
그다음에 여기 ‘화사’라고 되어 있어요. 그림 그린 화승입니다. 좀 전에 말씀드린 대로 산인 능학 비구, 누구 누구 누구. 근데 여기 보면 산인, 산인 이렇게 쓰잖아요. 그 경우에는 그 사찰에 계시는 스님이란 뜻이에요. 이런 것으로 본다면 이 그림을 그렸던 능학 비구는 바로 여기 사찰의 출신? 출신들, 대개 산인이라고 많이 썼습니다. 그다음에도 대화사, 클 대 자에다가 화할 화 자에다가 선비 사 자인데요. 이거는 돈 모으는 사람이에요. 화주. 그래서 그림 그리려면 돈이 무지 필요하잖아요? 그럼 여기저기서 다 돈 받아서 이 불사를 일으키는 사람을 화주라 그래요. 또는 대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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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불화를 설명하는 김정희 이사장>
그리고 여기는 보통은 앞에다가 연대를 쓰는데요, 여기는 뒤에다가 이렇게 연대를 썼습니다. 이건 1687년입니다. 이렇게 그림을 그려서, 마곡사, 그죠? 마곡사에다가 이 마곡사 괘불을 봉안을 한다, 그런 내용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마곡사는 바로 1687년에, 세 점의 괘불 가운데는 가장 늦게 그려졌지만 ‘염화불’이라고 하는 꽃을 들고 있는 석가모니를 그린, 또, 하나하나 명패가 다 달려 있어서 우리가 이 주변에 있는 인물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밝힐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그림입니다.
예전에 제가 여기에 대해서 글을 하나 쓴 적이 있었는데요,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 있죠? 인물들을 다 분석해 보니까 바로 법화경, 법화경의 서품(序品), 서품은 제1장이에요. 제일 먼저 석가모니가 영취산에 있을 때 설법을 하려 하니까 누가 누가 누가 이렇게 몰려들었다 하는 명단이 다 나와요. 거기랑 맞춰보니까 거의 같은 거예요. 바로 이 장면은 석가모니가 영취산 또는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장엄하게 그려낸 이런 그림이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자, 그래서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 세 점의 괘불, 공주 지역의 괘불은 조선 후기 17세기 괘불이 출현하고 나서 얼마 안 됐던 17세기에 집중적으로 그려졌습니다.
현존하는 괘불 120점 가운데 굉장히 빠른 시기에 그려진 아주 도상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이런 작품이라고 볼 수가 있고요. 특히 갑사 괘불, 신원사 괘불, 이 두 점은 아까 응열, 한 번은 보조 화승으로 나왔고 한 번은 수화승, 우두머리가 돼서 응열이 참여한 이런 작품이고 나중에 이 응열이라고 하시는 분은 똑같이 생긴 수덕사, 수덕사 괘불을 그리게 되고, 이러한 것들이 바로 충청지역에 이 시대, 17세기 후반에 괘불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낸 그림이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특히 신원사 괘불, 그리고 마곡사 괘불은 주존이 보관을 쓰고 있는 보살형이다~ 아까 대관보살형, 그리고 또 하나는 염화불, 이러한 중요한 특징을 갖는 그러한 부처로서 이것이 바로 한마디로 얘기하면 17세기 충청지역 괘불의 가장 큰 특징을 이루는 작품이고 이것이 모두 공주 지역에서 조성이 되었다는 데 가장 큰 의의가 있지 않는가 생각이 됩니다.
(방청객 : 괘불이, 한 400년 이상이 된 색감이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것이, 햇빛도 많이 받고, 탈색이 안 되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 궁금합니다)
네. 그거는 두 가지로 볼 수가 있는데요. 하나는 괘불은 많이 피지 않습니다. 몇 년에 한 번씩, 그렇게 피고 다른 것에 비해서 많이 피지를 않기 때문에 똑같은 시대 그림보다 손상이 좀 덜해요.
그런데 그 색깔이 변치 않는 것은 주로 광물질 안료를 쓰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광물질 안료는 시간이 가도, 이게 암석을 부셔서, 그 석채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그것들은 거의 색깔이 변색이 잘 안돼요.
다만 자세히 보시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상이 된 부분들이 나오는데, 뭐냐 하면 녹색이 손상이 굉장히 심하고 잘 떨어져 있어요. 왜냐하면 녹색 자체는 안료의 성질상 한 두 번 해 가지고 색깔이 안 나와요. 여러 번 해야 되기 때문에 다른 것보다 굉장히 두껍게 칠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리고 이게 독성이 강해서 종이나 이런 걸 다 산화시켜 버려요. 그러니까 잘 떨어져요. 막 무더기로 떨어져 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보시는 게 선생님께서 굉장히 생각보다 잘 남아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마 그런 석채를 쓴 것하고 그다음에 다른 거보다 많이 피지 않기 때문에 이런 거지만 잘 보면 많이 상해 있어요. 그래서 지금 보시는 괘불은 거의 다 보존처리를 한 겁니다. 예, 보존처리를 요즘에는 몇십 년 만에 한 번씩 해요.
(방청객 :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거 아녜요?)
1, 2억씩 듭니다. 굉장히 크잖아요. 인건비도 어마어마하게 들고, 종이가 몇 장이 들어가겠어요? 그렇죠? 문화재기 때문에 좋은 종이를 써야 돼요. 그러면 요~만한 거 한 장에 4, 5만 원씩 합니다. 그럼 수백 장이 들어가는 거잖아요? 종이 값만 해도 그렇고 안료, 굉장히 비쌉니다. 석채. 그래서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가는 거죠.
(방청객 : 약효 스님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아서 그것 좀 다뤘으면~)
네~ 약효는 제가 굉장히 관심을 많이 갖고 있고, 글도 많이 썼고~한 스님인데, 전체적으로 아까 왜 불화가 112점이 있다 그랬잖아요? 약효 스님은 너무너무 이쪽 지역에서 중요하신 분이고 또 특히나 이 마곡사에 거기서 계속 계시다가 돌아가셨죠. 약효 스님이 속했던 이런 걸 계룡산화파라고 불러요. 그래서 계룡산화파는 이 불화를 모든 사찰에서 그린 게 아니에요. 서울에는 흥국사, 어디는 뭐, 충청도는 계룡산이에요. 마곡사를 중심으로 하나의 화파가 형성이 됐는데 나머지 화파들은 쓰러졌어요, 그런데 약효 스님에게 나왔던 여러 제자들, 이런 사람들이 오늘날까지 불화의 가장 큰 줄거리를 차지하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마곡사가 굉장히 중요하고 그 시발점이 되는 게 바로 약효 스님인 거예요. 약효 스님은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네, 충청지역은 아까 말씀드렸듯이 오늘은 17세기 것만 갖고 했지만 약효 스님이 19세기 말, 20세기 거든요. 그래서 그건 비교적 후기이기 때문에. 오늘은 그냥 앞부분만 말씀을 드렸습니다.
(방청객 : 마곡사에 가 보면 대웅보전에 삼세불이 있잖아요~ 거기에 보면 약사미륵을 표현한 거를 보면 제화갈라보살로 표현해야 된다~ 그 기준점은 무엇인지요?)
아, 네~ 제가 말씀드린 대로 아까 석가모니, 제화갈라, 미륵은 수기삼존이에요. 그리고 석가모니, 아미타, 약사는 삼세불이예요. 좀 성격이 달라요. 그렇죠, 석가모니는 그 수기를 받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할 때인 거고, 그다음에 석가, 아미타, 약사는 과거, 현재, 미래. 그냥 그런 의미고 서로가 이런 관계를 갖고 있지는 않아요. 그래서 그거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고~
(방청객 : 부처님이 태어난 나라가 인도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디에서는 네팔이라고도 하는데 네팔이 맞는지, 인도가 맞는지, 아니면 어떤 연유가 있는지요?)
예, 옛날에는 아마 다 인도였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인도하고 네팔이 남겼는데, 룸비니는 네팔입니다. 실제로 태어나신 게 카필라, 카필라성에서 태어났는데 현재는 네팔이기 때문에 인도에서 갈 때는 비자를 받아서 가야 돼요. 아마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래서 현재는 네팔이지만 옛날에는 북인도에요. 그래서 그냥 우리가 인도에서 태어나셨다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네, 다 되셨죠?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공산성 이야기와 함께 디벨라 오페라단의 작은 음악회>
| 백제의 왕성, 공산성이야기 |
공주시 문화관광해설사 조옥순
비가오는 관계로 공산성 방문자센터에서 해설을 했다. 백제의 왕성으로써 웅진 백제시대 다섯 명의 왕 이야기와 세계유산인 공산성의 진정성, 완전성,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대해 해설했더니 모두 놀랍다는 표정들이다.
영은사에서는 임진왜란 때 최초의 승병장이었던 영규 대사가 승병들의 합숙소로 쓴 절이라는 것을 말해 주었다. 공산성에서 출토된 백제 갑옷에 645년 글자가 있어 최고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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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행사는 세계유산 활용 프로그램으로 국가유산청과 공주시, 충청남도가 지원하고 (사)한국국가유산안전연구소가 주관한다.
글쓴이 : (사)한국국가유산안전연구소 소장 이태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