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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리 소중한 것이여!" 2024년 공산성 달밤이야기


                                                                                                                                 김양숙 관장(박동진판소리전수관)

‘제비 몰러 나간다. 우리의 것은 소중한 것이여!’ 인당(忍堂) 박동진 국창을 떠올리는 문구이다. 박동진 국창은 판소리 완창을 통해 판소리 중흥의 기틀을 마련하고 판소리 대중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적벽가’ 예능 보유자로서 명실상부한 당대 최고 명창의 반열에 올랐던 공주의 자랑스런 문화 인물이다. 그런 박동진 국창이 남긴 자리를 꿋꿋하게 지켜나가고 있는 이는 김양숙 명창이다.
현재 그는 제2의 박동진 국창의 배출을 위해 매년 유치원생부터 초중고대학 및 일반인, 각 대학의 어학당 외국인, 각종 교육기관과 단체를 대상으로 판소리 교육과 체험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한양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판소리를 전공하고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적벽가’ 전승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사랑가’ 먼저 좀 배워볼게요

이야기는 이따가 제가 또 필요할 때 하겠습니다. 
‘사랑가’ 제가 표시를 해 왔어요, 
원래 칠판이 있으면 좋은데 칠판이 없어서 제가 그림을 그려서 저렇게 올려놓았습니다. 보세요. 

(PPT 화면의 사랑가를 가리키며 읽고 방청객이 따라 읽음)
 
                  
‘그때여 춘향과 도련님이 사랑가로 노니난디’, 디로 끝났어요, 디. 사랑가로 노는데~ 판소리는 표준말로 하면 안 돼요. 반드시 어디 말로? (전라도~) 어~ 이따 상 줄게요. 전라도 말로 해야 돼요. ‘그런데’를 전라도 말로 하면? (그런디~) 그런디~ 그란디~ ‘그리고’는? 그라고~ ‘그리하여’는? 그리허여~ 이렇게 사랑가로 노는데, 이렇게 하면 안돼, ‘사랑가로 노니난디~’  자, 시~작! (사랑가로 노니난디) ‘그때여 춘향과 도련님이’ 시~작! (그때여 춘향과 도련님이) ‘사랑가로 노니난디’ (사랑가로 노니난디~) 그 말로 하는 걸 판소리용어로 ‘아니리’(판소리에서 소리와 소리 사이에 가락을 붙이지 않고 이야기하듯 줄거리를 설명하는 부분)라고 해요, 아니리~ 그다음 소리 창 들어갑니다. 보세요. 올리세요.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방청객과 함께 판소리북을 치며 시창하면서 따라 부르기를 이끌어 감)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이 이 이 이 이 이 내 사랑이로다
아~마~도 내 사랑아

(주요 설명 요약)

> 어려운 소리를 잘하면 듣기가 좋은데 잘못하면 정말 웃겨요.
> 떠는 음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진도아리랑 예를 한번 들어보면~(시창) 
그 음 하나 이렇게 흔들어 줬는데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안 떨고 하면 국악 동요 같아요. 떠는 놈이 그렇게 중요해요. 
> 표현을 최대한 하면서 한번 해보면서 해볼게요. 

정말 잘하셨어요. 자 이제 추임새 알려 드릴게요. 여러분 추임새는 아는데 막상 추임새 넣으라 그러면 못 넣어요, 우리말인데도. 자 따라 해보세요. 
‘얼씨구~, 좋~다!, 잘 한다, 그렇지, 얼~쑤, 암~몬’, ‘암몬’이 어디 말이예요? (전라도~) 그렇죠, 추임새 중에 전라도 말이 ‘암몬’ 이라고 해서 그럼~, 그렇지, 그래 그래, ‘암몬’이 그런 말이에요. 
그럼 충청도 식으로 추임새를 하나 만들면? (그려~ ㅎㅎㅎ~) 그려~. 
부산 아이들이 박동진 판소리전수관 체험하러 왔어요. 
‘너네는 무슨 추임새를 하나 할래?’ 그랬더니 초등학생이 눈을 깜박깜박하고 있더니 ‘맞데이~’, ‘하모하모’ (방청객 웃음)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충청도 지역에서 온 학생들은 ‘그리어~’, 그거는 여기 전수관에서만 해라, 딴 데 가서 그리어~ 하지 마~. (방청객 웃음) 
 
‘암몬, 그렇지, 얼씨구, 얼쑤, 좋다, 잘한다.’
잘하니까 잘한다, 좋으니까 좋다, 얼씨구는 우리의 순수한 표현이에요. 
너무 신난다고 여러분 ‘앗싸’하면 안 돼요. ‘앗싸’는 우리 선생님께서 살아계실 때, 그때 살아계실 때 ‘앗싸’가 굉장히 유행했거든요. 아이들이 툭하면 앗싸 앗싸 했어요, 20년 전에. 그런데 선생님이 밖에서 요렇게 들으시더니 ‘전수관 안으로 들어오세요.’ 그러더니 ‘얘들아, 그 ’앗싸‘가 어디 말인 줄 알고 그렇게 쓰냐’고. ‘노래방기구가 일본에서 들어올 때 일본에서 같이 따라 들어온 말이야.’ 일본사람들이 신나면 ’아~싸 가오리‘ 이런데요. 그러니까 애들이 아~싸를 안 하고 ’얼씨구‘를 아주 진지하게~ 처음에 ’얼씨구‘하니까 아이들이 웃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춤출 때 하는 거로 알더라고요. 그래서 아빠가 피자 사오면 얼씨구 하겠데요, 앗싸 안 하고.  
자, 한번 넣어 볼게요. (시창하고 방청객과 함께 소리와 추임새 넣기를 지도함)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얼씨구~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얼씨구~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얼씨구~ 
이 이 이 이 이 이 내 사랑이로다, 얼씨구~ 
아~마~도 내 사랑아, 얼씨구~ 

(주요 설명)
첫 번째, 두 번째, 다섯 번째는 끝나고 들어가고
세 번째, 네 번째는 ’이‘에 같이 물고 들어갔어요.
첫 번째는 올리고, 두 번째는 내리고, 노래의 높이에 따라서 가면 돼요.
추임새는 대표적으로 ’얼씨구‘ 외에도 7가지 중에서 넣어요.

                                                                          북장단 배우기

(방청객을 좌, 우 팀으로 나누어 소리와 추임새를 지도함)
북 가르쳐줄게요. 북장단, 보기만 했지, 아까 북 산조(산조, 散調 : 가사가 없고 연주만 있는 기악 독주곡) 했잖아요? 사랑가 북반주를 한번 배워보고 직접 쳐보는 시간 가져볼게요. 이것은 판소리북이고요, 이렇게 얽어 놓은 건 사물놀이 북이에요. 사물놀이 북은 반듯하게 안 서고 이렇게 돼요, 이렇게 (기울어지게). 그리고 북 울림이 너무 커서 판소리할 때 그걸로 반주를 하면 소리를 다 잡아먹어요. 요게 판소리북이예요. 자 소리북을 한번 만질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다음 넘겨주세요. 다음 페이지, 이거 한번 읽어 볼게요. 1번부터 12박까지. 합, 궁, 딱, 시~작~(방청객과 함께) 합 궁 딱 궁 궁 딱 궁 궁 합 궁 궁 궁


합이 두 개가 나와요. 첫 번째 합은 이렇게 치는 거예요.(양쪽 손으로) 자, 손 높이 들어보세요. 북 모양 예쁘게 만들어 보세요, 북 모양. 북 배울 거예요. 올려보세요. 꺾으세요. 여기(머리에) 대세요. (하트 모양)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방청객 웃음) 오늘 와 주셔서 감사해요. 날도 더운데~ 그대로 펴세요. 합(박수), 합(박수), 합(박수). 왼손 드세요. 나랑 반대. 쿵, 쿵, 쿵, 오른손 주먹 쥐고, 딱, 딱. 한 번 해볼게요. 시~작! 쿵은 왼손이고 딱은 오른손, 자 시~작~ 
(방청객과 함께 12박 배우기를 진행함)

아홉 박은 척으로 해 와야 되는데 합이라고 하면 헷갈릴 것 같아요. 저걸 척으로 생각하고요, 9박은 궁 딱을 같이 치는 거예요. 첫 번째 합은 양편을 같이 동시에 치고 9박은 궁 딱 이렇게 치다가, (동시에) 궁딱, 여기서 얼씨구! 하는 거예요. 기억하세요. 시~작~ 
(방청객과 함께 12박 배우기)
여기~ 아버지 나오세요. 북채 여기 있어요. 한번 해보세요. 한번 해보세요. 
얼씨구 좋다. 계속 반복. 
판소리북 장단 쳐보기

(여러 어른, 아이 방청객들도 무대에서 판소리북 장단 쳐보기를 체험함)
여기서 나온 김에 소리 한번 해봐요. 우리 전서원은요 공주 아이인데, 지금 공주여중 1학년이고요. 
3학년때 아빠 손을 잡고 전수관을 찾아 왔어요. 소리 배우고 싶다고. 3학년 때 소리를 했고요. 재주가 굉장히 있는 아이예요. 그래서 5학년 때 전국대회 왕중왕, 거기는 상 탄 사람만 도전할 수 있어요, 전국대회에서 1, 2, 3등 안에 든 사람만. 거기 5학년 때 나가서요 대상을 받았어요. (방청객 : 오~ 박수) 그래서 공주에, 제가 원래 제자들 칭찬을 절대 안 하거든요. 저희 선생님도 저한테 칭찬을 많이 안 해주셔가지고~

 

 

                                                                             판소리 따라하기

(방청객 웃음) 아끼세요, 많이 아끼세요. 이 공주에서 여류 명창 하나 나올 것 같아요. (방청객 환호 : 오~ 박수) 제가 굉장히 희망을 갖고 가르치는데요. 착하고 인성도 바르고 소리를 참 잘해요. 아빠가 굉장히 바쁜데도 매일 전수관으로 실어 나르거든요. ’범 내려온다‘ 혹시 아세요? 범 내려온다. 작년에 왜 이날치 팀들이 범 내려온다 불러서 히트쳤잖아요. 전자 음악에 맞춰서 했는데 정말 소리, 범 내려온다, 오늘 한번 들려드릴게요. (방청객 환호와 박수소리) 준비가 됐어요? 한번 해볼까요? 좋아, 인사하고. 수궁가 중에 범 내려온다. 왜 손을 들고 나와 가지고~ ㅎㅎㅎ~ 
                                                                                        
(전서연 학생의 ’범 내려온다‘ 소리 독창)                       
범 내려온다, 범 내려온다
호랭이 내려온다, 저 짐승 거동 봐라
산 중 깊은 산골에서 한 짐승이 내려온다
저 짐승 거동 보소
두 귀는 찢어지고, 꼬리는 잔뜩 한 발이 넘고
동개같은 앞다리, 전동같은 뒷다리,
누에머리를 흔들 흔들, 몸은 얼숭덜숭,
새 낫 같은 발로 잔디 뿌리 왕모래를
엄동설한 백설격으로 좌르르르르르르 뿌리며
주홍 입 쩍 벌리고, 홍앵앵앵 허는 소리 산천이 뒤덮고, 땅이 툭 꺼지난 듯,
자라가 깜짝 놀래 목을 움추리고 가만히 엎졌구나

(방청객 환호 : 와~ 박수)

우리 서원이가 적벽가를 굉장히 잘합니다. 원래 고등학교 때 배워야 될 적벽가 중에 새타령을 중1 때 이미 다 뗐고요. 여러분, 이제 북도 배우고 소리도 배우고 추임새도 했어요. 소리할 때는 부채를 들고 발림이라는 걸 해요. 몸동작을 발림이란 용어로, 판소리 용어로 발림이라고 하는데 부채를 피고 접고. 사랑가 할 때, 요거를~ 서원이 뒤에 앉아 계신 분 나오세요. 부채 피는 거 알려드릴게요. 
(어린이들도 무대로 나오고 추임새와 부채 발림 시연을 함) 
사랑가 불러 볼게요. ’이리 오너라‘, ’아마도‘에 부채 피면 돼요. (사랑가 소리와 추임새와 발림 연습을 하고 김양숙 명창의 소리에 맞추어 부채를 들고 추임새와 발림을 체험함)

(김양숙 명창과 방청객이 함께 사랑가 소리를 합창함)

                                                                            진도아리랑 배우기

잘했어요. 다음 페이지 넘겨 진도아리랑 좀 찾아주세요, 진도아리랑. 여러분 진도아리랑 한번 또 배워볼게요. 사랑가는 여기까지만 하고,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시작!
(방청객과 함께 합창)


여러분, 유독 요 팀만 왜 잘하죠? (아니요~) 거기도 잘해요? (예~)(하하하~) 그럼 4절, 더 크게, 만경창파, 시~작! (방청객과 합창) (좋~다~)

여러분, 이팀만 왜 잘하냐면요, 흰 티 입은 네 명은 제 제자고요, 아까 쪼꼬만 아이는 수원에서 와요, 매주 수원에서. 너무 먼 데서 오길래 제가 가까운 데서 배우라고 소개를 해 준다고 해도 여기 공주까지, 차가 토요일 엄청 밀리거든요. 근데 오늘 또 이걸 보고 가겠다고 일찍 올라가라고 그랬더니 지금 이걸 또 다 참석을 하고. 밤 12시에 도착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앞에 세 분은요, 
매주 금요일 날 박동진 판소리전수관에서 직장인반 판소리 무료 강습이 있어요, 공주시 특성화 프로그램인데, 2년 되신 분도 계시고 4년 동안 꾸준히 나온 분이 계세요. 그래서 오늘 이렇게 한다고 하니까 구경하러 오셔서, 그래서 조금 특별히 잘하시는 거예요. 잘하세요, 3년, 4년 되니까, 한 학기에 몇 번밖에 안 오거든요, 가을 학기에 오고. 그런데도 꾸준~하게~ 다 직장인들이세요, 학교에서도 근무하고. 오니까 소리가 확실히 달라져요. 굉장히 소리를 많이 배웠어요. 홍부가도 배우고 적벽가도 배웠어요. 
적벽가, 박동신 선생님이 적벽가로 문화재 지정이 되셨기 때문에 배우고 싶다고 해서, 공주 사람인데 우리가 안 배울 수 있겠냐? 해서 적벽가도 배우고, 민요는 어려운 것 거의 다 배웠어요. 그래서 진도아리랑은 기본입니다. 굉장히, 그래서 잘해요.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꽃다지 사서 와 주셔서. (방청객 박수) 그리고 보니까 거기서 강습 무료로 받는 강습생들이 왔어요. 저기 요한이도 공주아이인데요. 저 아이가 북을 굉장히 잘 쳐요. 정식 제자는 아닌데 무료로 취미로 와서 배우는데 굉장히 재능이 있어서 전공을 국악으로 해서 전통예술고등학교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모르겠어요, 뜻이 어디에 있는지, 부모님 생각도 제가 모르겠고. 재능이 있으면 이쪽 길로 좀 빨리 정해서 갔으면 좋겠다, 요한아~ (방청객 : 하하하~) 굉장히 착하고 재능이 있어요. 북도 잘 치고요, 목소리도 좋아요, 노래도 잘해요. (방청객 : 오~~) 사랑가를 더 할까요? 진도아리랑을 더 할까요? (어린이 방청객 : 진도 아리랑~) 네 말 안 들어. (방청객 웃음) 진도아리랑 할까요, 사랑가 할까요? (진도아리랑~) 진도아리랑 한번 해볼게요. 
1절은 내리고 2절은 올리고 3절 내리고 4절 올리고. 1절, 3절이 음이 거의 같아요. 2절, 4절이, 1절, 3절이 음이 같고 2절, 4절이 음이 같아요, 올리는 거. 한번 해볼게요. 
(방청객과 함께 판소리북 장단에 맞추어 진도아리랑 합창 지도)

우리 제자들이 오늘 선생님 도와준다고 따라왔는데 잠깐 나오세요. (방청객 박수)
키 순서대로 서보세요. (4명) 우리 제자들이 민요를 한번 들려드릴테니까 추임새를 많이, 손뼉도 쳐주시고~ ’남원산성‘부터~ 끝나고 ’진도아리랑‘ 나갈게요. 인사~ 고한돌 선생님 어디 계세요? 북 장단 좀 잡아주세요. 우리 어린 제자들이 선생님한테 많이 혼나면서 굉장히 열심히 지금 소리를 배우고 있어요. 다 전통예술고등학교 목표로 지금 공부하고 있고요, 앞으로 박동진 선생님 소리를 이어갈 제자들입니다. 인사~ (방청객 박수) 

(민요 ’남원산성‘ 합창)
남원산성 올라가 이화문전 바라보니
수진이 날진이 해동찬 바람에 떳다 봐라
저 종달새 석양은 늘어져 갈매기 울고
능수버들 가지 휘늘어질 때
꾀꼬리는 짝을 지어 이 산으로 가면
꾀꼴 꾀꼴 음~ 어허야 어허야 디야
어허 둥가 어허 둥가 둥가 내 사랑이로다

네가 나를 볼라면 심양강 건너 가
이 친구 저 친구 다정한 내 친구
설마 설마 설마 서설마 네가 내 사랑이지 어허야 디야
어허 둥가 어허 둥가 둥가 내 사랑이로구나

옥양목 석자 없다고 집안이 야단이 났는데
새 버선 신고 속없이 뭐하러 또 내 집에 왔나
음음 어허야 어허야 디야
어허 둥가 어허 둥가 둥가 내 사랑이로구나

앞집에 큰 애기 시집을 가는데
속없는 저 총각 생병 났다더라
음음 어허야 어허야 디야
어허 둥가 어허 둥가 둥가 내 사랑이로구나
 
(’진도 아라랑‘ 합창)
(후렴) 아리 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음 음 음 아라리가 났네

문경세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 난다
(후렴)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속에 희망도 많다
(후렴) 

노다가세 노다나가세
저 달이 떳다지도록 노다나가세
(후렴) 

만경창파에 둥둥 뜬 배
어기여차 어야디여라 노를 저어라
(후렴) 

 


                                                                             박동진 판소리전수관 이야기

(방청객 환호와 박수) 그래, 애썼다. 애썼어. 들어가요. 고생했어요. 혹시 궁금한 것, 박동진 선생님에 대해서 궁금한 거 물어보시면 제가 이야기 해드릴 거구요. 판소리 이론,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 여기에 대한 것도 제가 다 오늘 조금 담아왔는데 시간이 지금 좀 그렇고 나중에 전수관에, 저희 전수관이 박동진 선생님 태어나신 곳이에요. 생가터에 전수관을 지었거든요. 지금도 많은 분들이 오셔서 박동진 선생님이 여기서 태어났냐고 물어봐요. 그러면 깜짝 놀라세요. 소리를 잘해서 전라도분인 줄 알았다는 분이 계세요. 
공주분인 지 모르는 분이 가끔 계시더라고요. 그 생가 터에 선생님 전수관이, 제자들을 양성하기 위해서 전수관이 지어졌구요. 7월에, 7월 11일에  박동진 선생님 명창명고 대회가 공주에서 열립니다. 
제일 뒷장 좀 넘겨주세요. 여기서부터 천천히 한 번 넘겨보실래요? 순서대로. 선생님이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 TV광고 히트 치셨죠? 넘기시고 또 넘기시고 장단 넘기시고 넘기시고. 이게 전수관이예요. 
저희 전수관 사진이에요. 굉장히 아름답거든요. 사계절마다 느낌이 다른데.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요. 365일 문을 항상 열어놨어요. 그리고 제가 저기서 살면서 관리하고 있어요. 언제든지 오셔도 돼요. 지나가는 길에 그냥, 여기는 소리 전공하는 사람 외에는 우리는 가면 안 된다라는 생각을 많이 갖고 계시더라고요. 오시면 유물전시관에 또 볼 것이 많아요. 
또 넘겨주세요. 이렇게 제가 전수를 하는데요, 요 꼬마가, 남자 애기가 아까 소리했던 고한돌 군이에요. 
저렇게 세 살 때부터 엄마이자 스승인 저한테 소리를 배워서, 지금 대학을 졸업하고 이 소리를 잇고 있는데요. 전 감사하지만 지금도 소리를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힘들기 때문에. 
우리 제자들도 보면 정말 안쓰러운 데 이걸 하겠다고 저렇게 오니까 감사하죠. 
소리가 계속 이어지는데, 어릴 때 다섯 살부터 무대에 서서 지금까지 소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기는 우리 전수관 내부인데요. 체험 학습 학생들이 전국에서 진짜 많이, 세종시에서 가장 많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체험학습하러 버스가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여기 유물전시관에 오시면 북도 선생님이 사용하시던 50년 된 북이 그대로 있고요. 선생님이 연습하시던 방도 꾸며 놨고요, 거문고 타시던 것, 선생님 의상도 전시가 되어있고요, 의상, 갓, 선생님이 평소에 쓰시던 부채, 다 진열이 돼 있어요. 저렇게 선생님이 공연하시던 모습을 영상으로 볼 수 있게 작년에 만들어 놓았어요. 상 받았던 것, ’인당의 소원‘이 있는데요, 저희 선생님 호가 인당이에요. 참을 인 자에 집 당 자. 하도 성질이, 화가 불같이 올라와 가지고요 장인어른께서 호를 지어주셨대요. 참을 인 자에 집 당 자. 근데 선생님이 내가 그 호를 받고 정말 성질이 많이 누그러졌대요. 호가 참 중요하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선생님은 끊임없이 창작활동을 하셨어요, 국가중요무형문화재잖아요. 그 문화재 하나 가지고 평생 살 수 있는데 끊임없이 창작활동을 하셨어요. 그러니까 만들 이야기가 너무 많다. 소리를 알게 되니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선생님 소원은 ’내가 무대에서 소리하다 죽는 게 소원이야‘ 이렇게 말씀하셨고요. 

                                                                       박동진 선생님을 이어가는 사람들

올해가 24회째입니다. 제가 공주에 온 지가 24년째인데요, 명창명고대회는 대통령상을 놓고 겨루어요. 
충남, 충북 합쳐서 유일하게 대통령상이 공주에 딱 하나입니다. 전라도에는 대통령상이 7개 정도 많아요. 근데 유일하게 여기가 하나예요. 그리고 정말 전라도 못지않게 전국에서 정말 깨끗하고 공정한 대회로 평이 나 있어서 전국대회에서 우리가 상금이 제일 작은 데도 이리로 다 오세요. 공정하니까, 다, 실력 있는 분들이 많이 오세요. 
중요한 건 추모음악회인데요. 대화하기 전날 전야제처럼 추모음악을 해요. 전석 무료입니다. 근데 와 보시면 공연이 정말, 어떻게 이게 서울 가서 볼 수 있는 공연을 공주에서 하지요. 세종에서 오신 분들이 너무 저보고 고맙다고 그래요, 이런 공연을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래요. 전통, 퓨전, 현대 음악, 창극, 제가 다 초청하거든요. 원래 추모음악, 이러면 제자들이 나와서 좀 슬픈 노래를 하고 진도 씻김굿을 하고, 전 그게 싫어요. 선생님 돌아가셨다고 해서 슬픈 음악이 싫고, 우리 음악의 다양한 음악을 골고루 보여드리고, 아~ 우리 한국, 우리 음악이 저렇게 아름다운 음악들이 있었어? 이걸 여러분들 좀 아셨으면 해서요. 정말 다양하게 퓨전부터 전통 판소리, 미니 창극, 국립창극단에서 내려옵니다. 탈춤까지 골고루 다 음악을 통해서 우리 음악의 우수성과 또 박동진 선생님도 추억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갖고자 매년 추모음악을 합니다. 오시는 분들 항상 오셔서 앞자리가 순식간에 나가더라고요. 저희가 초청장을 따로 자리를 미리 예약을 하는데요. 돌아가신 지가 24년째입니다, 지금. 2003년에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선생님은 떠났지만 그 전수관 자체가 선생님 정신을 기리는 곳입니다. 

                                                                        공산성에서 판소리 체험


아이들이 지금 수십 년을 해도 한 명 나올까 말까 해요. 한 곡을 갖고 수십 번 반복을 하고. 지금 오래된 우리 전서원이가 지금 4년째, 우리 지훈이가 2년? 수원에서 멀리서 와서 고생하고 있는데, 우리 래진이 한 3년, 아직 갈 길이 멀어요. 끝이 안 보이는 터널을 걸어가는 느낌이거든요. 언젠가 선생님이 그랬어요. 아무리 재주가 있어도 노력을 안 하면 안 된다. 노력을 굉장히 강조했고요. 연습의 중요성, 정말 강조하셨어요.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몸소 그 본을 보이셨어요. 저한테 매일 연습해라 연습해라 안 하셨고요 선생님 스스로가 그 본을 보이셨어요. 돌아가시기 전날, 기운이 하나도 없는 데도요 지팡이를 짚고 전수교육관을 건너가십니다. 가셔서 정말 들릴까 말까 한 목소리로 소리를 하셨어요. 정말 정말 들릴까 한 소리로 딱 15분. 원래 북을 잡으시면 기본이 4시간, 2시간 이렇게 연습을 아침에 하시거든요? 근데 그날은 딱 15분, 들릴까 말까 한 목소리로. 기운이 없으니까. 그리고 그때 전수관 조경을 다 마쳤어요. 담 쌓고 땅도 다지고 나무도 좀 심고 백일홍도 두 그루를 심어 놨거든요. 근데 그 백일홍이 7월 말에 핀단 말이죠. 근데 선생님이 7월 8일에 돌아가셨어요. 그 한 바퀴를 다 도시면서, ’다 됐다‘ 이게 마지막 말이거든요. 

 

 


굉장히 애착이 많으셨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굉장히. 공주분들은 왜 이렇게 박동진 선생님이 늦게 내려오셨나, 좀 야속하다 그리시는데요, 저는 선생님을 서울에서 모셨잖아요. 여기를 얼마나 그리워 한지 몰라요. 그리고 그 선생님 시대에는 전부 소리 하시는 분들이 전라도분들이라서 유일하게 충청도 분이 거기서 소리 할 때 얼마나 힘드셨겠나,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그 텃새며 유일하게 충청도 분이라 참 많은 서러움이 있었고 그래서 더 고향을 그리워하셨나? 굉장히 공주 얘기를 정말 제가 많이 들었고 그 산, 선생님 집 너머에 호랑이 나왔다는 얘기도 많이 했고요, 금강이 전수관 마당까지 물이 들어 왔대요, 
그래서 배를 타고 건넜다는 얘기도 해주시고, 부모님하고 고생하던 얘기, 배고프고 배곯았던 얘기. 공주시장을 5일마다 시장 장날에 꼭 나가세요, 할머니들이 요렇게 바구니에다 고구마를 놓고 파는데 너무 먹고 싶은데 못 사왔대요. 왜요~ 선생님? 그랬더니 고구마를 우리 어머니가 너무 좋아하시는데 그때는 내가 소리로 성공을 못 했기 때문에 많이 못 먹어, 배불리 못 먹을 때래요. 어머니가 그 고구마를 그렇게 좋아하는데도 맘껏 못 사드렸대요, 돈이 없어서. 그래서 고구마를 이렇게 바라보고 내가 그걸 보고 목이 멜 것 같아서 그냥 바라만 보고 오셨대요. 어느 정도로 가난했길래 그랬을까. 그게 예전 분들은 먹을 게 없고 소리는 하고 배는 고프고 하니까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었다고 그러잖아요. 그리고 광목을 배에다 칭칭 감고 뱃심 없으니까 코르셋 하듯이 꽉 조이고 소리한 영화도 있잖아요. 그래서 소리 많이 하신 선생님들은 비가 오면 온몸이 아프다고 그래요, 옛날 선생님들이. 소리 골병이 들어서, 못 먹고 소리만 하니까 소리 골병이 들어서 몸이 아프다고 그래요. 그래서 오래 못 사시고 많이 돌아가셨는데 선생님은 그래도 항상 하늘이 내게 복을 주셔서 내가 이렇게 장수하고 산다고 감사하다고 늘 그러셨고요. 

하여튼 굉장히 온유하신 분이고, 제가 며칠 전에 우리 애들한테 처음으로 선생님 장학금을 지금까지 받고 편지를 보낸 아이들,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아이들 편지를 아이들 읽으라고 줬습니다. 그때 애들도 놀라고, 선생님이 마지막 갖고 계신 집을 다 정리해서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에 장학금으로 내놓고 가셨고 지금까지 나가고 있더라고요. 그 아이들이 두 명씩 1년에 선정이 돼서 편지를 써서 대신 저한테 보내요. 그럼 저는 그걸 갖고 있다가 11일 날 추모음악회 때 선생님 큰 아드님이 항상 내려오세요. 그분께 편지를 전해 드립니다. 

저는 문화재도 아니고요, 선생님 마지막 제자라고들 하는데, 저는 우리 제자들한테 소리 연결해주는 사람이에요. 소리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교량 역할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름은 안 났지만 굉장히 제자들은 저를 소중하게 생각해요. 선생님이 안 계시면 소리가 끊어진다고 생각을 하니까. 그래서 굉장히 호되게, 아주 엄하게, 보내놓고도 잠을 못 잘 정도로 마음이 아픈데 굉장히 엄하게 가르쳐요. 그렇게 안 하면 소리를 할 수가 없어요. 그냥 놀 거 다 놀고 이러면 언제 명창 되겠어요? 그중에 또 대통령상 탈까 말까 하는데, 하여튼 대회도 와 보십시오. 치열합니다. 다 잘하는 것 같은데 딱 한 명만 대통령상 올라가거든요. 그럼 그 사람이 1년 내내 또 공부해요. 또 도전하고, 또 도전하고, 목에 피가 나도록 소리 한단 말이죠. 또 운동선수처럼 나이도 있잖아요. 또 30, 40 넘어 목이 또 좀 늙고. 하여튼 꼭 오셔서 보시고 전수관은 지나가시다가 표지판은 보는데 이상하게 안 들어오게 된대요. 어렵대요, 들어가기가. 정말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에요. 

                                                                                 충청도 중고제 이야기

아까 우리 제자가 심청가를 불렀죠. 그게 유일하게 충청도 중고제(中高制, 조선 헌종 때의 명창 염계달(廉季達), 전성옥(全成玉), 모흥갑(牟興甲)의 창법을 이어받은 판소리의 한 유파. 주로 경기도, 충청도 지방에서 발달하였으며 동편제와 서편제의 중간적 성격을 띤다.) 선생님인 김창진 선생님께 배운 심청가입니다. 우리 선생님의 심청가, 박동진제 심청가. 유일하게 다섯바탕(또는 다섯마당, 열두 마당 가운데 현재 소리와 함께 전승되고 있는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의 다섯 마당) 중에 그 심청가만 중고제 명창에게 배웠어요. 근데 그 소리를 중고제라고 할 순 없어요. 우리 선생님이 굉장히 바르게 얘기하신 거예요. 지금 중고제 중고제 하는데 얼마든지 그걸 우리가 중고제다~ 이럴 수 있는데 선생님은 여러 전국을 다니면서 소리를 배우셔 갖고요, 나름 그 소리를 나름 터득하셔서 선생님만의 창법을 만들어내셨고 지금은 ’박동진제‘라고 해요. 선생님은 내 소리는 중고제가 아니야, 요소만 들어가 있어요, 부분, 부분. 심청가가 내가 들어도 정말 낯설고 다른 네 바탕소리와 전혀 달라요. 우리 제자들도 느껴요, 선생님 정말 독특하다고 그러거든요. 그러면 그 중고제 선생님한테 뭔가 기본이 되어있단 말이죠. 근데 선생님이 100%가 아니니까, 내 소리는 중고제가 아니야. 옳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런데 아닌 것을 자꾸 중고제라고 그러면 안 되고, 선생님은 이젠 학계에서는 ’박동진제‘라고 합니다. 

선생님은 명창이 아니고 국창이라는 칭호를 쓰죠. 제가 국창 한번 찾아봤어요, 얼마 전에. 그랬더니 국창은 임금님 어전 앞에 소리한 명창을 국창이란 칭호를 내리는데 지금은 나라에서 인정해주는 명창을 국창이라고 한다. 아, 우리 선생님, 국창이라는 칭호를 앞으로 붙여야 되겠구나. 항상 붙였는데도, 선생님이지만 이 명칭이 바른가? 이런 생각을 제가 했거든요. 그냥 나는 우리 선생님, 박동진 선생님이 좋거든요, 명창보다. 우리 선생님도 항상 ’나는 소리하는 광대야~‘ 그 광대가 삐에로 이런 웃기는 광대가 아니고요. 
굉장히 한자로 좋은 뜻이거든요. 선생님이 그걸 굉장히 자랑스럽게 얘기해요. 나는 소리하는 광대야. 
나는 내가 발가벗고 종로 사거리에 가서 춤을 춰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 왜? 우리 것을 하니까. 항상 그런 얘기. 돌아가셨을 때 녹음 육성이요, 국악인 장례를 치르는데 국악원에서 선생님 목소리가 나오는데 진짜~ 아, 내가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저런 마음으로, 목숨을 걸고 할 수 있을까? 선생님은 저한테 처음 왔을 때 너 목숨 내놓고 소리하라고 그러셨어요. 너 소리 못하면 죽어라 그러셨거든요. 
근데 여자인지라 참 잔인하시다, 와 닿진 않았어요. 근데 세월이 지나면서 애들을 가르치면서 제가 하면서 정말 소리밖에 모르셨던 분, 소리를 정말 사랑하셨던 분, 점점 느껴져요, 점점. 선생님이 세월이 가면서도, 부모님도 그립지만, 선생님이 많이 그리워요. 저 아이들한테 소리 가르칠 때마다. 마디마디 여기는 선생님이 나를 어떻게 가르쳐 주셨는데 그 얘기를 또 아이들한테 전달을 하고 그 정신을 또 이어받게 하고. (객석의 제자 아이들을 보며) 얘들아, 열심히 하자, 고맙다! 

                                                                                     판소리이야기


저 아이들이 또 추모 때 또 공연을 준비합니다. 그 무대는 워낙 어려운 큰 무대라 정말 열심히 준비들을 엄청하고 있고요, 지금 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구요, 굉장히 어려운 노래를 지금 동작을 다 하고 있고 많이 혼도 나고, 끝나고 나면 또 보람도 있겠죠. 오셔서 추임새 많이 넣어주시고 춤도 추셔도 되고요, 격 없어요, 꼭 추임새 놓으셔야 되요. 서양 음악 들을 땐 조용히 듣고 일어나서 기립박수 쳐 줘야 되고, 판소리 들을
때는 조용하게 들으면 소리하는 사람 등에서 식은땀이 나요. 아무 반응이 없어~ 한국말로 우리말로 이야기로 소리를 엮어나가는데 왜 반응이 없냐고. 잘하면 잘한다든가, 못하면 못한다고 하든가, 못해도 잘한다고 해야 되요. 질문 없어요, 질문?

’박동진 선생님이 판소리에 한 획을 그었다, 그렇게 얘기들을 하거든요? 어떤 면에서 인지 잘 몰라서~‘

박동진 선생님은 완창의 대가라고 그러잖아요. 예전에는 선생님들이 한 20분만 돼도 ’아~ 나 오늘 소리 많이 했어~‘ 이랬대요. 그걸 ’토막소리‘라고 해요. 아까 심청가 한 대목, 뭐 한 대목, 토막소리만 하셨는데, 이제 외국 문물이 막 들어오면서, 영화가 들어오면서, 티브이가 들어오면서 소리가 자꾸 뒤로 밀려났죠, 그때. 그러니까 이제 판소리가 사라질 위기가 오니까 선생님께서 ’이러다가 우리 음악이 사라지겠다‘ 하고 완창을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를 한번 해봐야겠다, 시도를 하신 거예요. 그래서 최초로 68년에 흥보가를 5시간 45분에 걸쳐서, 20분이 가장 긴소리였는데 시작을 하십니다. 그때부터 춘향가, 심청가, 적벽가, 여덟 시간, 여섯 시간, 계속 매년 발표를 합니다. 그래서 창작 판소리, ’이순신전‘은 아홉 시간 45분짜리예요. (와~) 오시면 원고지가 11권이 다~ 가사가 있거든요? 그러면 9시간 45분을 할 때 이 북 반주가 몇 명이 필요하겠어요? 혼자 9시간 45분을 치면 나중에 일어날 때 다리가 안 펴진답니다. 몇 명을 교체하면서 소리하셨겠어요? 대충 맞혀보세요. (네 다섯명~) 네, 다섯 명. 2시간마다 한 명씩 교체하면서 고수를 5명이서 교체를 하고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물 마시면서 쉬지 않고 화장실 안 가고요. 

                                                                      완창의 대가 박동진 선생님

그 정말 기록을 세우셨어요. 마침 그때 대통령께서 그것도 현충일 날 하셨답니다, ’충무공 이순신전‘을. 대통령께서 현충원 갔다 오다가 이 유엔방송에서 막 흘러나오니까 대통령께서 박정희 대통령께서 그랬대요. 차를 돌려라. 그래서 그 공연한 장소를 오셨대요. 그래서 끝나는 걸 기다렸다가 듣고 악수를 선생님께 청하시고, 선생님 말씀으론 금일봉도 하사하셨다고~ 그래서 그때 선생님이 막~ 인기가 올라가신 거예요. 저는 ’충무공 이순신‘, 분량이 너무 많아서 선생님을 너무 늦게 만나서 다 못 되고 5바탕은 다 했고요. 그다음 성서 판소리 ’예수전‘이 있어요. 그걸 극동방송에서 작가가, 박동진 선생님이 워낙 소리를 잘 만드시니까 찾아 왔는데 선생님이 ’나는 무교이기 때문에 이 소리를 못 만든다~ 종교가 나는 없다.‘ 그래도 부탁을 하니까 선생님이 그 소리를 만들다가 아, 예수님이 너무 거룩한 분이라서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거예요. 선생님의 신앙 간증을 제가 들어봤는데 교회에서, 예수님이 미국 사람인 줄 알았다고, 처음에. 이스라엘에서 태어나셨잖아요. 근데 선생님이 그 소리를 만들면서 믿음 생활을 하셨고요. 
‘충무공 이순신전’은 정말 대작이에요. 그걸 이번에 추모 때 우리 고한돌 군이 최초로 53년 만에 그 소리를 무대에 올립니다. 박동진 선생님이 73년에 발표를 하셨는데요, 직통 제자가, 직계 제자가 선생님 소리를 그대로, 노량해전을 마지막 전투 대목을 무대에 그날 올립니다. 꼭 오셔서 좀 보세요. 그리고 제자들이 민요를 하고요. 우리 애들은 필히 적벽가를 해야 돼요. 왜냐하면 박동진 선생님이 적벽가로 문화재가 되셨어요. 그래서 우리 제자들은 어려워도, 여자가 부르기에 가장 어려운 소리가 5바탕 중에 뭐가 있죠?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 이 5바탕 중에 여자가 부르기 가장 힘든 소리가 적벽가래요. 남자가 부르기도 힘들어요. 제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하기 싫어서 도망도 많이 다니구요. 선생님 오늘 학교 시험 있어요, 오늘 좀 늦어서 못 가게 돼요, 그 활 쏘는 대목이 너무 싫은 거예요. 저는 좀 슬픈 노래를 좋아하는데, 부드럽고, 춘향가를 좋아하는데, 허이~ 적벽가가 여자가 한 명도 안 나오는 거예요. 전부 전투 장면입니다. 근데 포기를 했어요. 선생님이 문화재이시니까, 제가 전수생이니까, 이건 반드시 이수를 해야 되는 거구나. 그러면 싫은 거를 열 번을 더 하고 좋아하는 걸 세 번 하고, 적벽가는 열 번을 하고, 이렇게 해서 밸란스를 맞췄어요. 하다 보니 적벽가가 너무 매력이 있는 거예요. 여자로서 또 제가 최초로 학생 신분으로 적벽가 발표를 최초로 했고요, 학생 때. 우리 제자들은 여자지만 적벽가를 필수 해야 돼요. 저희들은 전수생이기 때문에. 그리고 또 적벽가 스토리는 또 남자가 해야 맛있어요. 여자가 하기엔 굉장히 벅찬 소리가 적벽가입니다. 선생님은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고요, 지방문화재하고는 또 다르죠. 선생님은 완창 시조, 시조라고 해요. 그 완창을 하면서부터 국립극장에서 매년 완창 무대가 열리는데요, 선생님 때문에 관례로 됐어요. 완창을 반드시 해야만 명창이라는 반열에 오를 수 있다~ 그래서 국립극장에서 매년 완창 무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관례처럼. 완창을 해야 합니다. 
근데 옛날에는 다섯 시간, 여섯 시간 하고 완창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세 시간도 하고 완창, 두 시간도 하고 완창. 선생님이 살아계실 때 막 야단치셨어요. 왜 세 시간 하고 완창이라는 타이틀을 붙이냐고. 옳은 말씀이죠. 제가 세 시간 할 때도 적벽가 반반탕을 하는데 저는 정말 죽을 것 같았는데 완창이라는 타이틀을 못 쓰게 하시고 어떻게 하셨냐면, ’김양숙 적벽가 발표회‘ 이렇게~ 선생님이 옳아요. 그런데 두 시간 해도 완창했다, 세 시간 해도 완창, 그건 아니라는 거죠. 완창은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중간에 물론 쉬고 물도 먹고 하는데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는 걸 완창이라고 해요. 

그 분야에서 큰 업적을 이뤘기 때문에 한 획을 그었다. 창작 판소리 대가시고, 예~ 이순신 충무공 탄신날은요 국군 방송에서 충무공, 선생님 음원을 계속 틀어줍니다. 진해 벚꽃 축제, 군항제 할 때 선생님이 항상 초청을 받고, 큰 군함에서요 이순신전을 소리하셨어요. 그러니까 아까 내가 만들 이야기가 많다고 그랬죠. ’논개전‘도 하다가 못 하셨죠, 팔려간 요셉, 성경에 대한 거 진짜 많이 하셨거든요. 끊임없이 소리를, 소재가 될 만한 건 다 소리를 만드세요. 그 정도로 만들 이야기가 많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저 이야기를 읽고요 연세 드신 분들은 안타깝다 그래요, 마음이 아프다고. 박동진같은 선생님은 오래 더 사셨어야 되는데~ 오~ 너무 빨리 갔다고~ 그러시거든요? 저는 선생님이 그렇게 갑자기 떠나실 줄 저도 몰랐어요. 안 아프셨거든요. 근데 갑자기 정말 그다음 날 아침에 정말 자는 듯 가셨어요. 막상 떠나니까, 제가 그때 가정도 있었고 아기도 있었는데요, 이 선생님 그림자가 그렇게 클 수가 없었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가르칠수록, 소리를 할수록, 계속 선생님이 보고 싶고 그리운 거예요. 추모도 그런 마음으로 즐겁게, 좋은 우리, 정말 다양한 좋은 음악을 우리 선생님도 추억하고, 또 그런 분들이, 우리 선생님같은 옛날 소리하신 옛날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지금 세대에 소리꾼들, 다양한 그런 악기나 파트들이 있거든요. 

(청중) ’판소리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발현이 됐는지. 전라도에서 발현이 된 건지 또 우리 충청도에서 발현이 됐는지. 판소리의 고향은 전라도가 아니라 우리 충청도 아닌가요? 또 금강을 중심으로 했다라는 용어가 맞는 건지, 그 말씀~‘ 

이론에는 이렇게 나와 있어요. 전라도 섬진강을 중심으로 동쪽에서 불린 걸 동, 서쪽에 부르면 서. 충청도와 경기도에서 불려진 판소리를 중고제라고 그래요. 그건 지역적으로 나눠진 거고요. 
음악적으로는 서편제는 슬픈 노래, 여성스럽고 꼬리 여음이 달린 것, 동편제는 남성적이고 꼬리를 탁 탁 끊어요. 중고제는, 이제 중고제가 사라졌기 때문에 그 소리의 흔적을 찾을 수 없으니까 이론적으로는 동도 아니고 서도 아니고 높낮이가 분명하고 책을 읽는 것 같다? 그건 아닙니다. 소리가 다 거의 같아요. 
거의 같고 지역적으로 중고제, 동편제, 서편제. 제가 충청도에서 소리가 시작된 것보다는, 살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지만 저는 저희 선생님한테는 전라도에서 소리가 나왔다 들었어요. 
전라도에서 나왔지만 원 명창은, 정말 원 명창은 충청도에서 나왔다 이렇게 얘기하세요. 사랑가를 최초로 만드신 김성옥 선생님도 충청 강경분이시고, 그 이동백 선생님도, 새타령, 새 소리를 똑같이 하시는 이동백 선생님도 충청도 분이시고, 황호통 선생님, 목통이 커서 아주 그냥 천 리 길까지도 목소리가 들렸다고 그러잖아요? 그분도 충청도분. 우리 전수관에 오면 비석이 다섯 개가 서 있는데요. 한 분만, 정정렬 선생님, 우리 선생님께 직접 춘향가를 사사했는데 그분만 전주 익산분이세요. 그분 외 나머지 세 분이 다 충청도분인데 그분들은, 많지만 딱 네 분만 선생님이 손가락으로 딱 꽂아서 이분을 비석을 세워라, 그 유언을 받들어서 저희가 전수관 안에 비석을 세웠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쪽 예산 이런 데서 그쪽 고향인 분들이 오셔서 저희 비석 세운 걸 보시고요 그때부터 비석을 세우기 시작을 하시더라고요. 
근데 그분들은 생가터도 찾을 수가 없고, 찾을 수가 없나 봐요. 우리 선생님이 그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좀 많이 알고 있었는데 제가 왜 기록을 못 해놓았을까 그런 후회가 좀 돼요. 저는 충청도에서 판소리 났다는 얘기는 저희 선생님한테는 전라도에서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고 원 명창은 충청도에서 났다. 거기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셨어요. 네. 

 

 


                                                                             서편제와 동편제의 구분

자, 말로 들으면 모르잖아요. 동편제는 뭐라고 그랬어요? 남성적이고 씩씩하고 꼬리를 탁탁 잘라요. 서편제는 슬프고 여성스럽고 꼬리를 좀 달아~ 자, 어떤 게 동편제인지 서편제인지 듣고 구분해 보세요. 해볼게요. 

(적벽가 중)
’동에 손권이요 북에는 조조라 ,,,,,,, 관웅이라’. (동편제~) 동편제? (네~) 다음에 또 들어보세요.

(춘향가 중)
‘방자 분부 듣고 나귀 안장 짓는다. 홍영, 자공, 산호편, 옥안, 금천, 황금륵, 청홍사 고운 굴레, 상모 물려 덥벅 달아’ (동편제~, 서편제~ 동편제~) 동편제 같아요? (하하하~) 다음에

‘춘향 엄무 퇴기로서 춘향이를 처음 밸 제~’ 동편이에요, 서편이에요? (서편제~) 서편제~? (네~) 서편제 할 거 같아서 동편제를 또 했어요, 제가. (방청객 웃음) 동편제예요, 동편제. 봐요. 
’춘향 엄무‘ 끊었어요. ’퇴기로서‘ 퇴기로서 기생으로서, ’퇴기로서 춘향이를 처음 밸 제‘, 춘향이를 처음 잉태할 때, ’밸 제~‘ 끊었어요. 이걸 제가 서편제로 해볼게요, 같은 장단에. 
’춘향 엄무~ 퇴기로서~~ 춘향~이를 처음 밸 제~~‘ 느낌이 달라요, 그렇죠? 근데 태몽을 했는데 슬프게 할 수는 없잖아~ 그렇죠. 그리고 또 맞춰보세요. 그냥 막 찍지 말고. 

’도련님이 이별 차로 나오시는디~‘ 벌써 답 나왔어~ 
’왠갖 생~각~ 부루~ 헌다~. 점잖으신 도련님이 대로변으로 나오시면 울음을 울~리~가 없지마는~~‘. 꼬리가 달려요. 그래서 내용이 이별 차로 나오는데, 서편제야 서편제. 이별 대목입니다. 
그다음 “쑥대머리~ 귀신 형~용~ 적~막 옥~방~의 찬 자~리에~ 생~각나는~ 것은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답 나왔어요. 무슨 제? (서편제~) 서편제. 이거 동편제로 불러 볼게요. 말이 안 되지만.
‘쑥대머리 귀신 형용~~’ 꼬리 달잖아요? 동편제로 굳이 하자면. ‘쑥대머리, 귀신형용’ 이렇게 해야 돼요. 호령조로. 그러니까 선생님님들이요 어떻게 그렇게 내용에 맞게 소리를, 그렇게 잘, 악보도 없이 악보도 없이, 다 천재셔 천재, 어떻게 노래를 이렇게 내용에 맞게 이렇게 잘 짜놓았지? 장단도, 박진감도, 어떤 건 빠르게, 어떤 건 느리게, 어떤 건 중간조, 엇모리부터 시작해서 너무너무 잘 만들어 놓으시고 하면서도 감탄이 나와요. 어떻게 이렇게 만드셨지? 악보도 채보도 없이 그 많은 분량을 머리로 외워서 하신단 말이죠. 선생님께서 내 머리에는 180시간이 들어 있어. 그 방대한 소리를 안 잊어먹기 위해서는 매일 해야 된다고 그러시더라고요, 매일. 밥을 먹어도, 자도 해야 되고, 누워도 해야 되고, 그래서 매일 연습 안 하면 야단치셨어요. 그리고 선생님이요, 이 말씀을 하셨어요. ‘내가 하루라도 밥을 안 먹고 소리를 하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 같아~’ 직장인들이 그 얘기를 유물전시관에서 보고 많이 반성이 된대요.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서 억지로 다니는데 저 말이 하루도 내가 소리 안 하고 밥을 먹으면 죄를 짓는 것 같아~ 그 말이 너무 와 닫는다는 거예요. 그 말 속에 선생님 정신이 다 담겨 있습니다, 소리에 대한 정신이. 이제 마무리할게요, 더 질문 없죠?.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소리 듣고 슬프다? 서편제, 아, 좀 씩씩하고 우렁차고 듣기가 좋다? 동편제. 



                                                            백제, 아시아 문화교류 이야기

                                    
                                                                                                                                                문화관광해설사 오경미



  <공산성에서 오경미해설사와 함께 이야기하다>


공산성은 백제의 2번째 시기의 왕궁,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백제 후기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되어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왕성으로 공주를 대표하는 관광명소 유적지입니다.
동아시아 문명형성에 이바지한 백제의 모습을 생생하게 확인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의 하나로 성곽 건축기술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찾아 볼 수 있는데요
우리 한번 이 성곽을 왕이 된 기분으로 체험해보는 멋진 시간 가져봐요~~  
특히 금강 변에 자리 잡고 있어 방어와 교류의 조건으로 백제가 고대 동아시아의 문물 교류를 주도한 원동력이 되었답니다.


  <공북루에서 고한돌 판소리>



이 행사는 세계유산 활용사업으로 국가유산청과 공주시, 충청남도가 지원하고 (사)한국국가유산안전연구소가 지원한다.

글쓴이 (사)한국국가유산안전연구소 소장 이태묵